이혼 대첩, 승자는?

[부부 싸움 일기] 느닷없는 이혼선언, 그 후

by 써니B

초등학생 두 딸의 엄마. 결혼 12년 차. 마흔넷의 봄은 유난히 춥고 쌀쌀했다. 남편이 느닷없이 이혼하자며 서류를 건넸다.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차디찬 겨울 왕국 감옥 속에 갇혀버렸다.


우리는 맞벌이를 했고, 힘들고 지칠 때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예민하게 굴었다. 부부싸움은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입버릇처럼 이혼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남편도 아이들 다 크고 나면 부부간에 졸혼(卒婚)을 해야 한다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농담처럼 이혼을 이야기하다 진심으로 이혼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사건이 생겼다. 남편이 이혼 서류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혼하자고? 성격차이로?”


혼인신고도 남편이 먼저 하자고 서두르더니, 이혼 서류도 남편이 먼저 챙겨 가져왔다. 4 살 연상인 나를 탐탁지 않아하던 시부모님의 반대도 넘어선 결혼이었다. 우리 둘 사랑을 막을 순 없다며 어렵게 한 결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에게 믿음직했던 남편은 어디에도 없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내 꼴이 딱 그 꼴이었다. 기가 막혔다.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배신과 분노는 사정없이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불쑥불쑥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장난이 아니네. 도대체 뭐가 문제야? 결혼하고 애 둘 낳고 열심히 맞벌이하며 힘들게 살았는데, 왜 이제 와서 이혼하자는 거야?’ 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 때문에 밤잠도 설쳤다. 떨리는 손으로 이혼 서류를 빡빡 찢어 버렸다.

남편은 극심한 마흔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남편은 10 년 넘게 일하던 직장에서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다. 일과 가정,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다며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각방을 썼다. 온통 부정적인 기운이 우리 부부를 휘감았다.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공격적으로 받아들였고,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불안한 관계를 들키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사납게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럴수록 마음이 황폐해졌다.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인상을 구기며 사납게 대들어 싸웠다. 금방이라도 가정이 쪼개질 것 같은 극도의 우울감에 시달렸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남편의 이혼선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어린 두 딸을 두고 이혼을 이야기하다니 너무 무책임했다. 아이들에게 불안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방안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한 느낌이 이런 걸까? 슬픔이 극에 달했다.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혼자 버려진 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 일어나서도 한참을 소리 내서 울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외로움이었다.

그렇게 인생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나. 그날 이후 조금씩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결혼 중간정산을 해야 했다. 우리 부부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싶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아프고, 꼬이는 건지 해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길을 나섰다. 나는 큰 딸과 유럽여행을 떠났다. 멀리 떠나면, 내가 선 자리가 다시 선명해지는 듯했다. 돌아와서 길잡이 수녀님과 2 년 과정의 부모교육과 상담, 마음공부를 했다. 나는 아직도 풀어야 할 내면의 숙제들이 많다.


그 후로 나는 남편으로 향해 있던 내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나의 어린 시절 불안과 부모에 대한 원망, 그 속에서 자라지 못한 나의 내면 아이를 만났다. 결혼을 통해 남편에게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상을 기대했다는 것도, 그것이 나의 내면의 결핍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남편에게 계속적인 기대를 하고 나의 결핍을 채워주기만을 바랬다. 결국 나의 결핍을 채워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를 찾고 자존감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나의 내면이 아파하는데, 왜 여태 남편에게 투덜대고 있었을까? 반성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제 더 이상 내 문제를 남편에게 겨누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마음공부한 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남편은 묵묵히 들어주었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나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남편도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남편을 향해 있던 불신의 마음을 걷어내니, 남편도 내 이야기에 집중했고, 자신의 이야기도 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치며 극한의 이혼 위기까지 갔었던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소리 높여 싸우지 않게 됐다. 감정이 바뀌니 행동이 자연스레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를 흐르던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애틋한 마음이 생겨났다. 어스름 저녁 남편과 나는 동네 체육관 숲길을 돌았다. 그리고 벤치에 앉았다. 오랜만이었다. 집 밖을 걸으며 차분하게 내 마음을 꺼냈다. 남편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마음고생한 남편에게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당신이 이혼 서류 가져와서 이혼하자고 할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어.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고. 외롭고 힘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 보이는 게 정말 싫어지더라.”

“해서는 안 될 이야기 해가며 당신 아프게 한 거 진짜 미안해. 내 진심이 아니었어.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주워 담고 싶어. 용서해줘.”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사과를 했다.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진심이 통해서일까? 남편도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야, 당신한테 상처되는 말만 골라서 했어. 내가 더 미안해.”

남편 목소리에도 떨림이 있었다. 진심이 묻어났다. 떨면서 용서를 구했던 나와 그걸 받아들인 남편 사이에서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기류가 형성됐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 나 없으면 뭐하고 살고 싶어? 혹시 독거노인 돼서 혼자 살려고?”


남편은 제2의 사춘기, 중년의 문턱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의 정체성을 찾아 길을 떠나 는 심정으로 절절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당신, 나랑 이혼하면 지금보다 더 멋지게 살 계획 있어? 나도 당신이 그럴 계획 있다면 놓아주고 싶어. 아이들 문제도 생각해야 하고 돌아보면서 우리 관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해.”


남편의 이혼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했던 지난 시간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그간의 변화된 내 생각을 전했다. 그런 내 진심을 남편도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지만, 남편은 내가 이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자 이혼이라는 방어벽을 무너뜨렸다.


그날 이후 남편은 내 이야기를 곰곰 되씹어보았다고 했다. 자신이 먼저 이혼 서류를 가져왔지만, 이혼에 대한 아무런 준비나 계획이 없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이혼 이후를 걱정하는 내 진심이 느껴졌고, 자신을 이만큼 생각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다음 날 남편은 혼자서 남해 보리암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대나무 숲길을 걸었어. 키가 큰 대나무들이 옆을 둘러싸고 있어서 혼자 가려니 무섭고 떨리더라. 그래도 걷다 보면 그 끝에 뭐가 있을지 알게 되겠지면서 계속 걸었어. 그런데, 그 길 끝에 뭐가 있었는지 알아? 바다가 펼쳐져 있더라. 너무 환상적이었어.”


“지금, 우리 사이도 그렇겠지? 당신하고 나 사이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직은 알 수 없어. 그래도 우리, 손잡고 그 길 끝까지 한번 걸어가 볼래?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길고 긴 이혼 대첩의 끝. 남편이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남편과 나 사이, 여전히 삐걱거린다. 하지만, 그것까지 다 수용할 만큼 단단해졌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건너온 덕분에 끈끈한 전우애까지 덤으로 생겼다. 결혼은 완성된 행복이 아니라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결혼에 대한 환상이 다 벗겨진 지금, 또다시 우리 부부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있다.


늦은 밤,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 하루 종일 부산하게 움직였던 마음들이 이부자리로 모여든다. 한없이 부드럽고 여유롭고 고요해지는 시간. 서로의 ‘관계’에 의지해 ‘따뜻한 온도’가 만들어진다. 부부의 온도는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삼한사온(三寒四溫 )’ 날씨에 비유되기도 한다. 춥기도 했다가 따뜻하기도 한 날씨처럼, 부부관계는 시소를 타기도 한다. 부부관계가 추울 때는 따뜻한 날을 고대하며 인내하고, 따뜻한 날에는 추워질 날에 대비해 준비를 해두면 될 일이다. 그래도 따뜻한 날이 추운 날보다 조금 더 많아서 살만하지 않은가?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부부가 진정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칼날만 한 침대에 누워도 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면 16m 나 되는 폭넓은 침대라도 비좁기만 하다. ’ 부부가 함께 쓰는 침대는 부부 사이 마음의 거리에 따라 비좁게도 느껴지고 폭넓게도 느껴질 수 있다.


우리 부부의 이혼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다만, 중년에 떠난 내면의 심리 여행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중년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우리 부부는 지금, 한 단계 더 깊어지는 ‘깊은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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