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부부 사이 온도를 측정해보면 몇 도나 될까? 5 년 전 이혼 대첩을 겪었던 시절을 술에 비유해보면, 그때는 절로 “캬하아” 소리를 내며 먹게 되는 알코올 향 강한 쓰디쓴 소주의 온도였다. 그렇다면 폭발 직전 위기의 과정을 지나 평안해진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연애 때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헤어짐의 위기 때처럼 쓰디쓰지도 않다. 그런대로 시원하고 맛있는 잘 발효된 과일향 수제 맥주의 온도쯤에 와 있는 것 같다.
새 학기를 맞은 두 딸은 새 친구, 새로운 과목, 새로운 선생님과 즐거운 탐색전을 벌여가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느라 바쁘다. 남편도 이제 새로운 바뀐 업무 파악을 끝내고 주민들과 만남을 통해 1 년 살이 계획을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다. 나도 굵직했던 회계 보고 업무 처리를 잘 넘겼고, 아이들과 방과 후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각자 맡겨진 과업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조금은 마음 한 구석이 빈 것 같은 느낌이 올라올 때가 있다. 바쁘게 아이들 새 학기 준비물을 사고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느라 바쁜 주말을 보냈던 나는 TV 앞에서 축 늘어져 있는 남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같이 나갈래요?” 내가 먼저 사인을 보냈다. 느릿느릿 남편이 “그럴까?” 뒤늦은 응답을 했다. “애들아, 엄마랑 아빠랑 데이트하고 올게 ” 이제 두 딸이 어느 정도 크니, 부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조금은 쉬워졌다.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약간 쌀쌀한 주말 저녁 뿌연 미세먼지 틈 속으로 걸어갔다. 슬쩍 남편 팔에 팔짱을 끼워본다. 키가 큰 남편에 내가 매달려 가는 형국이지만, 우리 부부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가고 있다.
우리 동네 분위기 좋은 카페 ‘안안(安安 )’에 들렀다. 라임 칵테일과 자몽 상그리아를 주문했다. 너무 쓰지도 그렇다고 너무 달지도 않은 잘 익은 지금의 온도에 딱 맞는 술이다. 부부 둘만의 시간. 아이들 문제도 집안일도 아닌, 오로지 부부 둘만의 데이트에서 정작 우리 부부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싱겁게도 우리 부부는 별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조심스레 내가 먼저 “요즘 힘들지 않아?” 말문을 건다. “이제 그런대로 걱정했던 일들이 자리를 잡아가 ”. “다행이다 ”. 홀짝홀짝. 여전히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남편이 편안하지 않은 걸 알지만, 그냥 조용히 마주 앉은자리에서 남편을 바라본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일 때 그냥 아무 말도 않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남편도 이 시간이 좋다고 한다. 2주에 한번, 아니 1주에 한 번쯤을 부부 둘만의 데이트를 가자고 남편이 먼저 제안을 한다. 뭔가 득템한 기분이다.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남편이 나서서 일정도 짜고 적극성을 띤다.
지난번 3.1 절에도 서대문 형무소에 가자는 제안도 남편이 먼저 했다. 내가 “우리 둘이 무슨 역사 체험할 일 있어?”하며 거절하는 통에 결국 함께 가지는 못했다. 남편이 느리고 내가 성격이 급하다 보니, 늘 이렇게 엇갈릴 때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느릿느릿하기만 한 남편 입에서 아주 굵직하고도 귀중한 황금 같은 한 마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 타이밍을 잘 잡아야겠다. 놓치지 말고 귀 기울여 듣고 기다려 주는 것. 지금 나에게는 그게 가장 큰 숙제다.
부부 둘만의 시간. 연애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냥 말없이 바라봐주고 들어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부부에게 둘만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베이스캠프가 된다.
사랑의 심리학을 연구해 온 아서 애런 교수는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다. 결혼한 지 평균 15년이 넘는 부부 53 쌍을 세 그룹으로 나눠 결혼생활을 지속시키는 데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한 실험을 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주 1 회 영화 관람 같은 익숙하면서도 즐거운 일을 하게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같이 춤을 추거나 콘서트에 가는 등 비일상적인 일을 하게 했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평소대로 생활하게 했다. 10주 후 조사해보니, 두 번째 그룹, 즉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활동을 한 부부의 만족도가 다른 부부들에 비해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부부라는 익숙함에 젖어서, 설렘을 잊은 채 너무 오랫동안 익숙한 방식대로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바빠도 부부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같이 해나가는 시간을 먼저 마련해 볼 것. 달지도 쓰지도 않은 현재 우리 부부의 온도에 딸 걸맞은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