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처음 내 방에 들어왔다

[부부 연애 소설]

by 써니B

기억은 참 초라하다. 서로에게 뜨문뜨문 남아있는 추억의 퍼즐 조각을 맞추고 있으면, 세월이 참 무섭기도 하고, 자세한 정황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억의 퍼즐 조각 하나 들고 떠나는 여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는 실마리가 되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의 연결 고리가 된다.


그 시절 나는 같은 부서로 들어온 후배 직원에게 많은 자극을 받고 있었다. 지겨워질 대로 지겨워진 조직 생활에 한 줄기 도전과 열정을 던져주는 젊음과 패기가 있어서 그에게 마음을 두고 지켜보았다. 네 살이나 어린 직장 후배를 마음에 두다니, 내 마음속에서 ‘후배냐? 남자냐?’를 놓고 계속 묻고 또 물었다. 혼자 묻고 답하기를 수백 번 하다가 노래방에서 우연히 그 당시 히트를 쳤던 자우림의 노래 ‘애인 발견’을 만났다.

바보 같다 생각했어 너를 한 번 봤을 땐
멍청한 눈 헝클어진 머리 마른 몸
착하다고 생각했어 너를 두 번 봤을 땐
상냥한 눈 귀여운 머리 날씬한 몸


사람들은 너를 몰라 안경 너머 진실을 봐
어리숙한 모습 뒤에 천사 같은 네 영혼을
나 밖에는 아무도 모를 거야


바보 같다 생각했어 너를 한 번 봤을 땐
어눌한 말 촌스러운 표정 어색했지
착하다고 생각했어 너를 두 번 봤을 땐
솔직한 말 신선한 표정 좋았지


사람들은 너를 몰라 안경 너머 진실을 봐
웃고 있는 얼굴 뒤에 기댈 곳 없는 내 어깨를
너 밖에는 아무도 모를 거야


사람들은 우릴 몰라 안경 너머 진실을 봐
이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게도
가득가득 많고 많은데


너는 너무 착해 내가 너를 지켜 줄 거야
지금 이대로 좋은 사람 그대로
나는 너무 약해 네가 나를 지켜 줘야 해
지금 이대로 좋은 사람 그대로


나는 내 마음속 혼란스러운 질문과 대답에 지쳐 이 노래를 부르며 시원하게 해소를 했던 거 같다. 그는 나의 애인이라고. 그는 바보 같고 멍청하고 어눌하지만 착하고 천사 같고 내가 지켜주고 싶고, 나를 지켜줄 사람이라고 기대하며 혼자 놀기의 극치를 보여줬던 거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우리 둘 이야기라고 여기며 함께 불렀던 노래. 추억의 노래. 자우림의 애인 발견. 지금 다시 들어도 가사가 딱 우리 이야기이다. 안경 너머 진실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우리 둘을 연결해주었다. 안경을 쓴 사람 둘. 남자와 여자. 그 둘은 착하고 바보 같고 인상마저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다리 만하게 키가 큰 남자. 커다란 고목나무에 매미 붙듯이 자그마한 여자. 그렇게 서로를 안경 너머로 보고 있었다. 한번 보고 두 번 볼 때마다 점점 진한 국물 같아지는 사람이 있다. 기댈 곳 없는 외로움을 서로에게서 발견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씩 조금씩 어깨를 빌려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날 내 마음의 방, 자취방이 떠오른다. 자취방 한 구석에서 술에 절어 모로 누운 사람들 사이로 그가 보였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는 그가 지금 내 방에 와 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때 입었던 그 체크무늬의 선명함을 잊을 수가 없다.


밤새 뒤척이다가 부엌을 왔다 갔다 했다. 여전히 자고 있는 그를 위해 냉이 된장국을 끓였다. 해장을 시켜주고 싶었다. 이 사람에게 이런 애틋한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티 내지 않으려고 한동안 선배이자 상사로서 근엄하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틈새를 알아차리고 그가 들어왔다.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눈맞춤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열병 같은 사랑이 나에게도 왔다.

그의 긴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남자의 가느다랗고 긴 고생 하나 안 하고 손에 물도 한번 묻히지 않은 것 같은 손가락을 보면 설렌다. 그의 젊음과 패기도 좋았다. 또 겉으로만 강한 척, 여리디 여린 그의 내면을 보듬어 주고도 싶었다. 그렇게 마음의 불꽃같은 감정들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서 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렇게 둘 다 두꺼운 안경을 썼었다. 호기심 많고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컸던 두 사람의 눈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것이 나와 그의 연애의 시작. 강렬한 첫인상이다. 후배에서 애인으로 발전된 그와의 인연은 ‘이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 되면 어떨까?’하는 호기심 어리고 두렵고 떨리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설렘의 여정이었다. 서로에게 기대고 싶은 외로움을 숨길 수 없었고, 둘의 연대로 하나가 되었다.


그녀 : 우리 둘이 노래방에서 <애인 발견 > 불렀던 거 기억나?
그 : 그럼 , 2001 년도였지, 아마 ~
그녀 : 그래. 맞아. 그때 자우림 노래 많이 불렀어. ‘애인 발견’이라는 노래가 꼭 당신이랑 나 같은 안경잡이들한테 딱 맞는 노래였어.
그 : 당신 , 혹시 나한테 애인 발견하고 대시한 거 아니야?
그녀 : 내가? 내가 왜? 당신이 나한테 먼저 대시한 거지? 내가 노래 부르는데 당신이 먼저 내 옆으로 와서 같이 불러놓고선 뭘 그래?
그 : 그거야, 사람들이 같이 부르라고 밀쳐서 떠밀려 간 거야.


다시 시작된 남편과 나의 진실공방. 도대체 누가 먼저 고백하고 더 많이 좋아했는지를 따지는 것만큼 무익한 일이 또 있을까?


그가 처음 내 방에 들어온 날. 내 마음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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