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연애 일기] 부부의 추억 수첩 속으로
“먼 길을 떠나기 전
신발끈을 단단하게 동여매는 마음으로
서로가 믿음으로 꼬아온 소중한 인연의 끈을
이제 묶으려 합니다.
청명한 이 가을에 다짐하는 처음 마음
그대로 지키며 살겠습니다.
오셔서 지켜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 두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오래된 가족사진을 정리하다 컴퓨터에서 우연히 청첩장을 발견했다. 2002 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월드컵의 열풍을 뒤로하고 우리 둘은 몇몇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띄웠다. 온라인 청첩장에는 지금 보면 약간 낯부끄러워지는 문구가 들어 있다. 배경음악은 윤도현의 사랑 two. 소양강에서 찍었던 풋풋한 연애 시절 사진도 있다.
피곤한 듯 쿠션에 기대 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여덟 줄 밖에 안 되는 시야. 잘 들어봐 ” 하며 17 년 전 청첩장을 읽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알 턱이 없는 남편이 말똥말똥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여 듣는다. 편지글 낭독이 끝나자 남편은 “오오 올. 좋은데?” 하며 반응을 보인다. 우리 청첩장 문구라고 이야기해주니 “정말? 지금 다시 들어도 좋다” 며 엄지를 척 내민다.
나는 ‘처음 마음 그대로 지키며 살겠습니다’라는 문장에 마음이 머문다. 어쩌자고 이런 맹세를 했었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낯부끄럽기도 하다. 도대체 결혼할 당시 우리가 함께 먹었던 ‘처음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첫 마음을 그대로 지키며 산다는 건 어떻게 산다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처음처럼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난데없는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혼자 중얼거리듯 묻는 내 질문에 남편이 하나하나 답변을 해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는 그런 마음. 잘 살고 싶은 마음. 그게 처음 마음이지”
“그래도 우린 첫 마음을 지키면서 힘든 상황 견뎌가며 잘 살아왔잖아”
“애들 키우면서 이혼 안 하고 살면 잘 사는 거지”
나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 맞다. 맞아. 당신이랑 나랑 결혼 안 했으면 지금처럼 못 살았겠지”
“결혼 준비하다가 한번 큰 소리 내면서 싸운 적 있었는데, 그때 헤어졌으면 결혼도 안 했겠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칭찬해 ~”
연애 때는 삐지거나 토라진 적은 있어도 서로 큰 소리 내는 싸움 한번 안 했던 우리 둘이 결혼하자마자, 큰소리 내가며 소리소리 지르고 몸싸움도 불사하며 온갖 종류의 부부싸움을 다 해봤다. 함께 살아온 기간만큼이나 우리 싸움의 역사는 깊고도 깊다. 그래서 지금의 평화가 고맙고 믿기지 않을 만큼 소중하다.
“당신 , 다시 결혼한다면 청첩장 문구 어떻게 쓸래?”
“누구한테 청첩장 보낼까?” 내 질문에 남편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우리, 이혼 안 하고 아직 잘 살고 있어요”
우리 이혼 상담받아주고 이야기 들어줬던 사람들한테 감사함의 리마인드 청첩장을 써야 할 판이다.
남편이 내친김에 결혼 20 주년 이벤트는 부부 둘만의 여행을 가보자는 제안도 서슴지 않는다. 리마인드 웨딩. 리마인드 청첩장. 리마인드 신혼여행. 일상을 함께 사는 부부가 한번씩은 해볼 만한 이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