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정 Apr 01. 2017

모범생의 야간열차

서울여자 도쿄여자 #44

서울여자 경희 씨


안녕하세요? 작가님이라고 부르다가, 경희 씨라고 불러봅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고요? 우와 역시나 행동파 경희 씨답습니다.

네, 저는 모범생이에요. 늘 그랬어요. 그게 저에겐 제일 마음이 편하거든요. 저는 야간 열차를 타는 대신, 틈틈히 쉬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가끔 말이죠. 저는 학교를 쉬었습니다. 딱히 이유는 없어요. 학교엔 전화를 해서 "선생님, 저 감기에 걸렸어요."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아니 거짓말이 아닐지도 몰라요. 정말로 머리가 아프고 열도 좀 나는 것 같았거든요. 그땐 몰랐지만 어쩌면 생리전 증후군이었을 수도 있어요. 여하튼 컨디션도 별로고, 학교에 가봤자 공부가 될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뭐 그런 날이 좀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석달에 한 번쯤 학교를 쉬었어요. 경희 씨가 말했듯 저는 '모범생'이에요. 네 성적이 좋았어요. 그래서 모범생일 수도 있어요.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는 유일한 학생이라고 저를 모르는 교사는 없었어요. 네 그런 이유에서도 모범생일 수도 있어요. 게다가 생긴 게 쌍꺼풀도 없는 눈에 아기자기해서 뭐 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그런 이미지도 있어서 '모범생'처럼 보이기만 하는 건지도 몰라요. 여하는 '모범생'처럼 보이기 때문에, 제가 전화를 해서 감기라고 하면 담임선생님은 제일 먼저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걱정이 아닐지도 몰라요. 다 알면서 그랬는지도. 여하튼 다른 말씀 없이 그냥 믿어주셨어요.


개근상 따위는 당연히 받아본 적이 없어요. 틈틈히 쉬었으니까요. 딱히 쉰다고 뭘 하는 건 아니예요. 교과서를 펴서 읽기도 하고, 하늘만 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역시나 '모범생'다운가요? 그렇게 쉬었어요. 쉬다가도 '괜히 쉬는 건 아닐까. 내일 수업을 못 따라 가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고, 찜찜한 마음도 있었지요. 그래도 그렇게 석달에 한 번 숨통을 틔워주면, 또 석달은 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모범생'의 외투를 입고서 말이죠.


제가 학교를 쉴 수 있었던 건, 저희 부모님 덕분입니다. 엄마는 한 번도 학교에 왜 안 가냐고 묻지 않았어요. "엄마, 나 쉬고 싶어."라고 말하면 "그러렴."이라고 말하며 같이 커피를 마셨습니다. 학교는 억지로 가는 곳이 아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더불어 엄마도 제가 '모범생'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어요. 엄마는 싫은 눈빛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렇게 믿어주었기에 저는 오랜동안 제가 좋아서 '모범생'으로 살아온 게 아닐까 싶어요. '믿음'이란 참 중요하지요. 게다가 부모의 '믿음'은 아이를 키워주고 지켜줍니다. 저도 저희집 세 아이들을 믿어주고 싶어요. 아니 꼭 믿어야지요.

그런 '땡땡이'가 저에겐 '야간열차'였던 것 같아요.


도쿄에도 야간 열차가 있냐고요? 도쿄에서 타면 머나먼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서 내려주는 고급 '카시오페아'란 열차가 있답니다. 먼 훗날 나이가 들면 한 번 타보고 싶네요. 저는 열차하면 시베리아 철도가 떠오릅니다. 꼭 한번 그걸 타고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그 머나먼 장정을 떠나보고 싶어요. 글도 쓰면서요. 왠지 시베리아 철도에 오르면 괜찮은 소설이 하나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꿈을 꿔봅니다.


도쿄여자 민정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