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집 안에 고양이 넷, 집 밖에 강아지 넷

그리고 길냥이들

어쩌다 보니 고양이 강아지 8마리의 집사가 되었다. 고양이들은 분당에 살던 때, 내 공황장애가 극에 달해 나 살자고 데려오기 시작한 아이들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냥이들은 나의 숙면과 심신의 안정 그리고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고 열심히 다니게 해주는 동기부여를 담당하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무릎 위에 별이, 노트북 앞에 미카, 소파 위 크림이 그리고 인간 포함 우리 집 서열 1위 사랑이는 침대를 독차지하고 있다. 



시골로 내려와 살면서 삽살개 둘, 풍산개 둘을 어쩌다 보니,,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돌보게 되었다. 강아지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강아지'라고 말하기엔 너무 큰 것 아니냐 말한다. 뭐.. 사이즈로만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니, 덩치 큰 아기 대형견들이라고 해두자.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이 덩치 큰 강아지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있는 몇 가지 문제 행동을 해결하려고 시작한 것이 어쩌다 지금까지 집사노릇으로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은 너무 사납게 짖었고, 물기도 하고, 으르렁 거리기도, 때로는 견사 안을 뱅글뱅글 도는 등 몇 가지 심각한 문제행동을 하고 있었다. 8년 차 다묘 집사인 나는 고양이 케어는 어느 정도 아는 것이 많았지만, 강아지 케어는 처음이라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주인도 아닌 상황에서 그것도 이 시골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정말 많았다. 


두렵기 때문에 무는 것이고, 불안하기 때문에 짓는 거예요.
강아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 행동은 산책시켜 주면 다 해결됩니다.
- 강형욱


수의사가 없는 시골 동물병원

'무엇이든 해보자'라고 결심하고부터는 도움과 조언을 얻기 위해 읍내 동물병원도 몇 군데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시골 동물병원은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다. 간혹 열려 있어도 수의사  선생님들이 자리를 비운 경우가 많았다. 몇 번을 허탕 치고서야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골의 동물병원은 반려동물을 위한 병원이라기보다는 가축 위주의 병원이다 보니 수의사 선생님들이 대부분 농가에 출장 진료를 나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읍내 동물병원은 포기하고, 시골 내려오기 전까지 우리 냥이들을 돌봐주셨던 분당의 동물병원 원장님(젠동물병원 구원장님)께 인스타 DM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고, 상태를 설명하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강형욱, 설채현, 이찬종 훈련사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독학하기 시작했다. 짐작은 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태생적으로 강아지와 고양이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회화가 잘 되어있지 않은 이 대형견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매너를 가르치고, 훈련하고, 산책시키는지.. 모든 것을 그렇게 혼자 공부했다.


산책시켜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길래

매일 견사를 찾았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매일 산책을 시켰고 매일 예쁘다 예쁘다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눈비 가림막 지붕을 해주고, 야자수 매트를 깔아 포근하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허술한 견사 망을 직접 고쳐주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고양이에게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강아지 웃는 얼굴도 나에게 보여주었다.


삽살개 연희(맨 위 좌), 풍산개 통(맨 위 우), 삽살개 자로(맨 아래 좌), 웅(맨 아래 우)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사랑이 답이에요,
많이 예뻐해 주세요.


처음부터 이상했던 것이 있다. 삽살개 둘, 풍산개 둘. 이 네 마리의 콧등이 심하게 갈라지고 까져서 피까지 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분당의 젠동물병원 원장님께 인스타 DM으로 아이들 콧등 사진을 보내고 상태를 설명하며 도움을 청했다. 어떤 약을 처방해 주실까 DM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장님의 답변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이었다.


"심리적인 문제네요. 이런 상태라면.. 어떤 약물치료보다는, 아이들이 불안하다 느끼지 않게 많이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세요. 그럼 좋아질 겁니다."


???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도 수년을 믿고 의지했던 선생님이라 더 묻지 않고 그냥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해 주는 것. 시골에서 혼자서 뭐 다른 방법이 있겠나. 


아이들의 표정이 좋아지고 문제 행동이 개선되는 속도만큼 아이들의 콧등도 서서히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정말 어떤 약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좋아진 것이다. 정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는 '사랑'이 답인 걸까.


여기 시골에는 새벽 내내 눈이 내렸다. 오늘도 나는 눈길을 걸어 아이들에게 간다. 눈밭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내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고, 아이들이 미소 지으면 나도 미소 짓게 된다. 분명 내가 강아지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강아지들이 나를 위로하고 사랑해 주고 돌봐주는 기분이 드는.. 


오묘한,, 고양이 넷, 강아지 넷 집사의 일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회생활하면서 소시오패스 거르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