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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Feb 15. 2016

협상은 줄 긋기가 아니다!

협상의 목적

'협상에 있어 단순히 선을 긋다'


중학생인 큰 아이가 컴퓨터가 필요하단다. 아빠나 엄마의 노트북을 쓰라고 했더니, 친구들은 모두 자기 컴퓨터가 있단다. 방에서 홀로 게임을 즐기고 싶은  요량이다. 큰 아이의 속셈을 눈치챘지만, 그 나이에 게임이지만 컴퓨터를 투닥 투닥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뭘 살지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형의 컴을 사려는 것을 꼬맹이가 눈치챘다. 꼬맹이가 내 옆에 붙어서 '아빠, 나도, 나도 컴 사줘!'. 컴을 형제가 나눠 쓰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할인 매장에서 노트북을 샀다. 노트북을 들고 집의 문을 여는 순간 형제가 시끄럽다. 큰 아이 : '아빠!, 노트북은 내 거니까, 내 방, 내 책상에 놓을 거야!'. 꼬맹이 : '아빠, 그건 절대 안돼! 내 방에 놓을 거야'. 큰 아이 : '내가 중학생이니까, 나는 컴을 써야 돼. 네가 중학생 때 컴을 써!'. 꼬맹이 : '싫어, 나도 겜 할거야!'


 노트북이 아니라 불화의 씨앗을 가져왔다. 큰 아이와 꼬맹이는 자기의 주장만  되풀이한다. 큰 아이는 자기가 컴 주인이고, 꼬맹이에게는 빌려준 단다. 꼬맹이는 왜 형만 컴을 사주냐, 자기도 컴이 필요하단다. 결국, 내가 심판관이 되어서 선언했다. '형이 70%, 꼬맹이가 30%의 컴을 사용한다. 꼬맹이는 월, 화 그리고 토요일 오전에 컴을 쓰고, 형은 나머지 시간에 컴을 쓴다, 꽝꽝 꽝!'. 아빠의 힘과 논리로 형제의 분란을 진압했다. 


 큰 아이와 꼬맹이는 씩씩거린다. 아빠의 힘에 눌렸지만,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둘은 70% 대 30%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70% 대 30%의 이유를 둘러 됐지만 확신하지 못한다. 형제의 협상에 있어 나는 대충 선만 그은 것이다. 누구의 요구도 충족하지 못했다. 


'고객과의 첫 기술 협상'


 수의 계약으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도 있지만, 수의 계약은 전체 계약의 20% 미만이다. 나머지 80%는 경쟁 입찰이다. 경쟁 입찰은 입찰자의 기술과 가격을 평가하여 프로젝트 계약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고객과 일정기간 기술협상을 한다. 기술협상은 사업범위, 이행방법, 이행일정 등 제안서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 

 

 부장 시절에 처음으로 40억 규모 프로젝트의 기술협상에 임했다. 내가 기술협상의 전체 책임자는 아니고, 내가 작성한 제안 영역을 고객과 협상했다. 내 영역에서 함께 일할 컨설턴트의 경력이 부족하다며, 고객은 과장급 컨선턴트를 부장급으로 교체를 요구했다. 또한, 프로젝트 AS 기간을 1개월 늘려 줄 것을 요청했다. 


 컨설팅 프로젝트의 원가는 95% 이상이 인건비다. 과장급을 부장급으로 교체하고, 프로젝트 근무기간을 늘리면 프로젝트 수익성은 바로 떨어진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내가 밑지는 장사로 생각했다. 나는 과장급 컨설턴트로 충분하다고 주장했고, 고객은 부장급 정도는 되어야 믿고 맡긴다고 했다. 나는 고객과 협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했다. 땅따먹기와 같이 어떻게 선을 긋느냐에 따라 잃거나 따거나...


 결국, 전체 기술협상 책임자가 나서서 종결했다. 오래된 일이라 협상 결과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고객의 요구보다는 다소 낮춰서 컨설턴트를 추가 투입한 것 같다. 그러나 또렷이 기억한다. 고객과 나는 협상의 결과에 불편했던 것을. 형제의 노트북과 같이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땅따먹기가 아닌, 블록 쌓기'

 첫 협상 이후 몇 번의 기술협상을 경험했고, 책임자로서 프로젝트 전체를 바라보며 일 했다. 협상은 선긋기가 아니고, 제로섬 게임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 첫 협상에 후회하고 내 미숙함이 부끄럽다. 


 프로젝트 기술협상에 대해서 간과한 것은 '협상은 프로젝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보완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내 제안서는 내 관점일 뿐이다. 경쟁자보다 다소 좋은 평가를 받은  것뿐이다. 고객이 볼 때, 아쉽고 미흡한 점이 있다. 고객은 경쟁자의 장점을 프로젝트에 반영하기를 원한다. 당연한 요구이다. 


 기술협상을 '목표를 이루기 위한 보완 과정'으로 설정하면, 고객의 요구사항은 '프로젝트 방법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해당한다. 말을 뒤집으면 고객 요구사항의 배경은 프로젝트를 잘하기 위함이다. 내 목표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시작하면 기술협상은 땅따먹기가 아니라, 블록 쌓기가 된다. 목표를 위해 고객과 내 생각을 하나씩 협상의 탁자 위에 하나씩 쌓을 수 있다. 


 첫 협상에서 고객은 부장급 컨설턴트와 컨설턴트 투입 기간의 연장을 요구했다. 나는 고객 요구사항을 비용으로 인식했다. 비용이 아닌 고객의 우려과 불안으로 이해했다면, 내 협상 자세는 달랐을 것이다. 이렇게 대응해야 했다. 


'저는 제안된 컨설턴트에 대한 고객님의 우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잘 끝내기 위한 고객님의 걱정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음과 같이 인력을 운영하면 어떨까 합니다. 일단, 프로젝트 처음 1개월간 제안된 과장급 컨설턴트를 투입합니다. 고객님과 제가 함께 과장급 컨설턴트의 산출물을 검토했으면 합니다. 검토 후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면, 제가 그 부족한 점을 매울 컨설턴트를 추가 투입하겠습니다.'


 위의 대응이 모든 프로젝트에서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고객의 우려에 대한 공감과 해결을 도모한다. 


 고객이 수용하면 누구에게도 손해가 아니다. 과장급 컨설턴트가 일을 잘 끝내면, 나는 본래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면 고객도 불만이 없다. 과장급 컨설턴트가 부족하면, 나는 인력을 추가 투입한다. 이때, 고객은 최초의 요구사항이 실현된다. 나, 프로젝트 관리자도 잃는 것이 없다. 기술협상 당시 고객의 요구사항이 없더라도,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컨설턴트를 추가 투입해야 한다. 고객과 나, 그 누구도 손해가 없다. 기술협상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면 된다. '프로젝트 착수 1개월 간 OO영역 산출물을 검토한다. 검토 후 프로젝트 진도, 품질 등에 문제가 있을 경우 컨설턴트를 추가 투입한다.


 마무리

 

 아이들의 노트북 협상에도 미숙한 제가 기술협상에 대해서 감히 글을 올립니다. 사소하고 부족하지만 제가 깨달은 것을 나누면,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합니다.  다음번에는 '기술협상의 테크닉'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sejeleeac@gmail.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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