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인 Sep 20. 2022

모든 일에는 우연이 있었다

'구멍'을 썼다

"작가니까 담배 피우시겠네요?"

흡연이 작가의 직업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묻는다. 담배, 술, 약, 여행, 그리고 사랑 같은 것에 중독된 건 아니냐고, 소설 쓸 땐 반쯤  그 속에 빠져 있는 건 아니냐고 물어온다. 아니면 여성 작가들에 대한 환상이라도 되는듯  우아한 원피스에 긴 머리를 찰랑이며 공원 벤치에 앉아 영감을 좇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들의 대답에 웃기만 했다.


 예전에 미국에서 살 때는 미국인들이 나에게 곧잘 태권도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김치볶음밥을 잘 만들고, 떡볶이와 불고기를 좋아하고 ( 그건 사실이다.) 공부를 잘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그 선입견이 좋은 쪽으로 작용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한국 교민들은 서로 만나면 '우리는 한국인이라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 뭐든 잘해야 직성이 풀린다'며 웃곤 했다.


작가는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야.

'친구'가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작가라고 모든 걸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믿는 쪽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애연가인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난 그녀가 참 좋았다.  자신의 흡연 사실을 숨길 필요까지는 없지만 널리 알리고 싶지는 않은 그녀의 심리를 적다 보니, 소설의 다른 부분도 썩 괜찮게 써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수줍어하며 친구에게 소설을 보여주었더니

"네가 쓰려는 게 뭐야?"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며 적당한 대답을 찾아 헤맸지만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소설을 읽은 친구의 반응이 '혹시 너 담배 피우니?'라는 질문을 애써 참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친구의 마음속에 그런 의구심을 떠올리게 했다는 건 묘사가 꽤나 좋았다는 이야기니까  이번 소설은 일단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쯤 후에 나는 다시 원고를 들쳐보았고, 생각보다 유치한 내용에 깜짝 놀랐지만, 아마도 친구는 내가 흡연자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빠져 소설의 유치함은 깨닫지 못했을 거라는,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원고를 퇴고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