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인 Jul 28. 2024

9일

9일 동안이나 바라야 할 소원이 있을까 싶지만,

  요즘 내내 쉬었다. 4월에 수술받고 나서부터였으니까 벌써 4개월을 게으르게 보냈다. 6월에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또 여행을 몇 번 갔고, 다녀와서도 쉽게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많은 만남을 취소하고, 약속을 미루고, 계획을 변경했다. 결국 8월까지는 죽은 듯 쉬겠다고 결심했다.

  쉬면서, 다시 앞으로 9일 동안 기도할 지향을 정했다.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9일 동안이나 기도할 것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기도가 영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1000일이나 100일이 걸리는 게 아니어서, 겨우 9일만 기도하면 완성되어 신께 닿을 거라고 믿을 수 있어 감사하다. 나처럼 게으르고, 인색하고 가성비 따지는 데다 극 F라서 T 적인 사고를 못 하는 사람에게는 더 적합한 기도가 없다고 본다.

  

  첫날은 희망으로만 기도를 시작한다. 로또 복권을 사둔 것처럼, 내 희망이 이루어진 후 일어날 모든 좋은 것들을 상상하고, 행복하다. 소원이 이루어져도 100%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님을 깨닫는 것은 둘째 날과 셋째 날이면 충분하다. 기도 초짜인 나에게는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가 가장 힘이 든다. 이 기도를 완성 시킨다고 해서 큰 의미가 생길까, 의심과 불안이 떠올라 먹구름 잔뜩 낀 하늘처럼 희망을 가려버린다. 나는 그 시간을 ‘회색 기간’이라고 부르는데, 솔직히 ‘회색 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던 기도도 몇 번인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을 참고 넘기면 일곱째 날부터는 수월해진다. 여덟째, 아홉째 날에는 9일 기도를 완성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하마터면 닿지 못할 뻔했던 희망이 다시 보인다. 미래에 대한 즐거운 상상으로 입가에도 웃음이 넘친다.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도 차가워진다.


 내 삶의 기도는 소박하다. 내 삶이 더 변화하기를,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죽을 때 까지는 내가 태어난 목적을 잘 수행하기를, 먼지같은 삶이지만 약간이라도 세상에, 누군가에게라도 쓸모 있는 삶이었기를 바란다. 9일 동안이나 바라고 또 바랄 일들이 생기고, 그 작은 소원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시간이 내 삶의 한 부분이었음을 감사하는 시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