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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Aug 17. 2017

노자의 '오감도', 도덕경 50장

십삼인의 아해와 태어나는 무리와 죽어드는 무리 그리고 무덤에 드는 열셋

태어 '나고' 죽어 '든다'


태어나는 무리는 열셋이요
죽어드는 무리도 열셋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꼼지락거리다 무덤에 드는 이도 열셋이다
어찌해서 그런가 그 삶을 두텁게 살기 때문이다


듣건대 생을 잘 다루는 이는
뭍을 걸어도 맹수를 만나지 않고
전쟁을 나가 갑옷입은 병사가 되지 않는다
들소는 그 뿔을 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는 그 발톱을 할퀼 곳이 없고
그 전쟁은 그 칼날을 쑤실 곳이 없다
어찌해서 그런가 그는 무덤이 없기 때문이다


出生 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亦十有三. 
夫何故.以其生生之厚. 
蓋聞 善攝生者 陸行不遇兇虎 入軍不披甲兵. 
兇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출생 입사 
생지도십유삼 사지도십유삼
인지생 동지사지 역십유삼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합문 선섭생자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 시무소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부하고 이기무사지(도덕경 50장)



■ 이 장의 핵심은 십유삼(十有三)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왜 갑자기 이런 숫자가 등장했을까. 이것을 십분의 삼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십유삼이란 말이 세번 등장하기에, 3분의1 정도로 해석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구유삼(九有三)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노자가 옛날사람이라고 산수를 이 정도로 대충하는 사람이란 얘긴가.


13으로 보자니 이게 무슨 뜻인지 해석이 필요해진다. 사지(四肢)와 구규(九竅)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고(「해로」, 하상공 등), 13개의 선덕과 13개의 악덕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고(엄준), 십악삼업(十惡三業)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고(두광정), 오행생사(五行生死)의 수를 말한다는 주장도 있고(범응원), 칠정육욕(七情六慾)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고형). 열셋이란 숫자를 때려 맞추려다 보니 견강부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 옛날 사람들도 딱하다. ㅋㅋ


합쳐봤자 10분의9 밖에 안되니 나머지 10분의1은 뭐냐는 논의가 또 나온다. 소철은 10분의1이 불생불사의 도라고 말했고, 오징은 태상진인을 가리킨다고 했다. 설혜는 선섭생자(생명을 잘 지키는 사람)를 말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십유삼은 그냥 13이다. 세상 만물 전부를 가리키는 대표숫자다. 13이 왜 그런 의미를 갖는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13이란 숫자를 가져온 것이다.


세 개의 13 중에서 마지막 13은, 앞의 두 가지 13을 하나로 정리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태어나는 존재가 열 셋이면 당연히 죽는 존재도 열 셋이다. 태어난 만큼 죽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사를 합쳐놓고 봐도, 응애 하고 울고 태어나서 꼼지락거리며 살다가 무덤으로 골인하는 사람의 숫자도 13이다. 


두 문장은 생명 일반의 생과 사이고 마지막 문장은 '인간'의 생과 사로 구체화되어 있다. 그 강조점이 옮겨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뭇 생명이 모두 태어나고 죽듯이, 인간 또한 피할 길 없이 태어났다가 딱 그 숫자만큼 모두 돌아가신다.


왜 이런가. 당연한 숫자 놀음인데, 노자는 이걸 생지후(生之厚)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악착같이(잘, 두텁게) 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죽음을 부르는 것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들은 말처럼 슬쩍 옮긴다. 사실은 안 죽는 방법이 있다 '카더라'. 카더라 뉴스로 전하는 까닭은, 이걸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안 죽느냐. 무덤을 안 만들면 된다. 무덤은 죽을 자리다. 일부러 제 무덤을 안 파기만 해도, 그토록 허무하게 죽을 일은 없다는 얘기다.


노자는 고대의 '죽음을 부르는 상황'을 열거한다. 두 가지는 무서운 짐승에게 당하는 것이고, 한 가지는 그보다 더 무서운, 전쟁에서 죽는 것이다. 사실 뿔 달린 소나 발톱 세운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일은, 그냥 '양념'으로 붙인 것에 불과하다.


노자가 하고 싶은 말은 전쟁에 가서 칼 맞고 창 찔려 죽는 것이다. 이건 막을 수가 있다. 전쟁을 안 만들면 된다. 굳이 갑옷을 입고 죽음을 피하려 할 게 아니고, 전쟁 자체를 없애면 된다. 그러면 많은 어이 없는 죽음들을 구할 수 있지 않는가. 이런 얘기를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전쟁 준비를 하는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 이, 참새 뜯어먹는 까마귀 13마리가 정말 대박이다.




여기에, 서비스 하나를 추가한다. 시인 이상의 '오감도'는 노자 도덕경 50장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13명의 아해(바로 49장에 나오던, 그 우는 아해다)가 등장한다. 그냥 한번 읽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삶의 불안하고 허무한 조건들에 대한 한 언어건축가의 설계를 감상해보라.



烏瞰圖 詩第一號 / 오감도 시제1호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혓소.
(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

(한글로 풀면)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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