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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23. 2017

(번외)'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이런 세상에도 존재하는 사랑





 여러 출판사들로 흩어져있던 김연수의 소설들이 문학동네의 디자인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읽었지만 갖고있지 않았던 책들을 다시 사기 시작했는데, 사고 나니 또 읽을 수밖에. 더군다나 '밤은 노래한다'는 읽었을 때에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책인데다가 지금 떠올려봐도 줄거리조차 기억나지 않으니 더더욱 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민생단 사건, 혹은 반민생단 투쟁 사건에 대해 다룬 소설이다. 동만주 지방, 그러니까 지금의 연변 지방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민생단이라는 친일 성격의 민족주의 단체와 연결되어 중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의심받으며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된 사건이 민생단 사건이다. 민생단으로 오해받은 인물들은 민생단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동료를 팔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기도 하였으며, 혹은 탈출하여 공산주의를 저버리거나 혁명가를 부르며 죽어갔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죽어나가던 이 역사적 사실의 잔해를 김연수는 아주 철저하게 추적하여 이 한권의 소설로 묶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박완서의 말마따나 실록처럼 읽힌다.


 따라서 어려울 수 있다. 동만특위니, 만철이니, 동만청년총동맹이니 하는 단어들이 한페이지에도 무더기로 쏟아지는 이 소설을 정확히 이해하며 읽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어렴풋이 '아, 이 단체는 중국쪽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을 이르는 말이군, 아 이 동맹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띈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단체로군' 하는 식으로만 파악했으니, 나는 이 소설 속 이야기의 큰 줄기를 말그대로 맥락만 읽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연수는 이 소설 속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는다. 그가 만일 실록을 썼더래도 나는 만족하며 읽었을만한 사람이지만, 이 이야기 역시 김연수식의 이야기 구성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들이 등장하기에 나는 결국 두번째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일제의 통치가 시작되던 해에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은 소위 지식분자로, 일제니 공산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들과는 꽤 먼 거리를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만철 직원으로서 간도에 특파되어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인 나카지마와 교류하고, 그곳 용정에 체류하던 이정희라는 여성을 사랑하기 시작하며 그가 알던 안온한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가 표현했듯, 세상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며 찍어 그려낸 지도와 발로 걸어서 측량해 그려낸 지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이전까지는 하나의 세상만을 알았으나, 일련의 사건 후에 그가 알게된 것은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 그리고 그것들이 중첩되어 있는 이 세계의 본모습이었다. 


 '... 그 충격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그 말을 듣기 이전의 밝은 세계에서 내가 영원히 추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다음은 믿을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한 어둠의 세계, 나 자신도 신뢰할 수 없는 밤의 세계였다.'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결국 얻어낸 치유의 순간은 아름답다. 절망 이후 아편에 중독되어 더러운 아편굴을 전전하던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주인공은 결국 살아남아 세계를 등진 채 묵묵히 그야말로 살아나간다. 그러한 그에게 새로운 치유의 순간은 찾아왔으니,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나는 지난 가을의 고통을 완전히 치유받았다. 지금 여기 내게 없는 것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이리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빛도 어둠도 아니면서 동시에 빛과 어둠인 세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낸 자신의 세계 역시 혼돈의 세상 속에서 완전히 박살나버린다. 이때부터 이야기의 속도는 진전되고, 주인공과 얽힌 다른 인물들에 대해 숨겨져있던 이야기의 파편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인물로 돌변한다. 낭만적이고, 현실적인 당대의 지식분자에서 혁명가를 부르는 시대의 단단한 전사로. 그 변환 이후에 반민생단 투쟁 사건이 스멀스멀 입을 벌리고 모두를 집어삼킨다.


 이후의 이야기는 소설을 읽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실 줄거리를 좀 자세히 요약해서 적어두려고 했으나(나중에 또 까먹을까봐.. 김연수의 이야기는 플롯이 교묘하게, 그러나 아주 효과적으로 얽혀있어 한번 읽어서는 당최 기억해내기가 힘들다), 다시 읽어보니 서평을 쓴 한홍구님이 자신의 서평에 이 소설의 줄거리를 시간순서대로 친절하게 밝혀두었다. 기억이 안난다면 그 서평을 다시 읽어보려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등장한 가장 좋아하는 대사. 주인공을 사랑하게 된 여옥이가 외발로 주인공을 만나러 달려온 후 내뱉는 대사다.


 "내사 모릅지. 지금 어떤 시절인지 내사 모릅지. 내시 아는 것이라곤 외발로라도 반나절이면 어랑촌에 갈 수 있다는 것뿐이겠으꼬마. 시끄럽습둥. 내사 얼굴이 전만 못합메?"


 이러한 세상에도 사랑이 존재한다. 아는 것이라곤 외발로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다는 것뿐이니, 이 시대가 어쩌한지 시끄럽게 떠들지 마시라, 그보다 내 얼굴 예전보다 못나졌느냐고 묻는 사랑이. 



+ 모두를 사랑했다는 말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는 말.

++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이 온통 초록으로 물들 것처럼 세상이 푸르렀다는 문장.

+++ 그리고 사실은 이런 글을 더 잘쓰는 것 같은 김연수의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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