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과 코미디가 반짝이는
최근에서야 이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을 봤다. 예전에 B형이 자신의 인생영화로 이 영화를 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이 영화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굳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다만 이동진의 영화당을 요즘 종종 챙겨보는데, 그중 한 편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중 하나로 이 영화를 소개한 토막을 보고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휴 그랜트의 사랑에 빠진 그 눈빛과 표정, 그 모든 총체적 모습을 보고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영화는 종종 신데렐라 스토리의 남자 버전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분, 혹은 상류층에 속하는 여성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고민과 그들의 갈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사랑의 성취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서사는 신데렐라의 그것과는 다르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의 윌리엄 대커는 신데렐라처럼 수동적이지도 않고 조력자의 도움으로 사랑을 쟁취하지도 않으며 안나 스코트는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랑만을 기다리는 왕자님이 아니다. 이 영화의 매력요소는 그런 캐릭터들에서 나온다.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고 모든 것들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아이돌이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모습, 가진 것 없이 형편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남성이 자신의 비밀스러운 연인이 험담을 당할 때 그들의 앞에 나서 자신의 연인을 변호하는 모습 같은 것들. 그리고 때때로 보여지는 로맨틱한 장면과 코믹한 장면들의 적절한 구성, 마음에 담을만한 좋은 대사들까지. 게다가 탁월했던 ost의 선정과 배우들의 연기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의 로맨틱한 것들은 휴 그랜트에게 거의 모두를 기대고 있고, 코미디는 라스 이판스가 없었더라면 이만큼 성취되지 않았을 것이다. 휴 그랜트의 흔들리는 눈빛과, 라스 이판스의 팬티바람을 비롯한 익살스러운 패션들을 떠올린다면 수긍이 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다. 뻔하게도 결국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그 순수한 진정성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조심스레 던져진 질문과 대답으로 성취되는 지점에서 솟아나는 따듯한 마음은 다른 영화에서와는 다르게 관객으로 하여금 온전한 미소를 짓게 하는 부분이다. 결국, 극 중 안나가 말하듯이 우리 모두는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남자이고 여자일 수밖에. 그러니 시간을 아까워한다면 모든 계산들과 저울질을 내려놓고 가장 빠른 루트로 상대에게 직진하는 편이 좋다.
+ 순이를 사랑하게 된 뒤로 길가에 수많은 순이가 걸어 다닌다고 했던 서정주의 말이 생각났다. 물론 서정주의 문장에 담긴 의미와는 다르지만, 안나를 사랑하게 된 뒤로 그녀를 의식한 그의 세상에 (실제적으로) 편재하는 대커의 시선들을 보면서.
++ 줄리아 로버츠라는 배우에 대해 큰 인상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집중하게 되었고, 휴 그랜트의 사랑 연기가 어찌 그리 성숙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둘 모두 이 영화에서 반짝반짝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