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로 설명하기란 정말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늘 익숙한 어떤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아마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그냥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너무 연결되어 있어 그 모습을 오관으로 풀어낼 수가 없다. 연결되어 출렁이는 존재의 장과도 같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부드럽고 약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소년과 청년의 떨림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가장 어울릴 자리는 수도사나 수도승이다. 아버지는 영원히 늙지 않는 까까머리를 한 젊은 수사 같은 모습으로 내게 비친다.
아버지는 우리가 얼마나 약한 피조물인지를 매번 알고 있는 듯했다. 부서지거나 날아가는 것. 마음은 부서지거나 날아갈 수 있는 것. 아버지는 나를 볼 때 늘 달려오는 아이 같은 표정을 자으셨지만 내가 어디론가 빠져나가기라도 할 듯 가자미 눈으로 나를 감시했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늙지 않는 목소리. 성당의 천장을 타고 퍼지는 목소리들. 구전으로 전해진 선율은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이다. 아버지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사셨다. 자연스럽지 않은 걸 못 견뎌하셨다. 여자애들이 예뻐 보이려고 꾸며내는 목소리에나 허세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화를 내셨다. 나는 아빠와 반말을 하던 사이였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이 부모님께 존댓말을 써야 훌륭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빠에게서 온 전화에 응 대신 예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펄쩍 뛰시면서 너 왜 그러냐고 하셨다. 내가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했더니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상한 형식이나 거리감을 싫어하셨지만 내가 커서는 별거 아닌 걸로 화를 내시기도 했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춘기 시절의 아버지는 너무 무섭고 화가 나는 대상이었다. 나를 사랑해서 한 행동들에 숨이 막혔고 나는 조용히 무수한 저항을 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유순했지만 나는 수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일탈과 태업을 일삼았다. 아버지 돈을 타서 수없이 헛짓을 했다. 아버지가 싫어할 만한 짓을 대담하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들키지 않아서 나는 늘 착한 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버지는 여리고 예술적인 청년이었고 자신을 닮은 딸을 아끼고 사랑했다. 사랑은 두려움을 생산해낸다. 이별, 상실, 훼손, 배신의 두려움을. 나는 아버지 감정의 구체적인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나로 있다가 사랑하는 대상이 되었다가 매번 자리가 바뀌었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뗀 한 남자의 영혼을 추억한다. 음절을 늘여 성대를 울리는 챈트에서 그의 소리를 듣는다. 이제 나이가 앗아간 그의 목소리, 아직 젊었던 그의 유쾌하고 지적인 목소리를 기억한다.
https://youtu.be/lJ65D3nJ1X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