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대 빵집, 그 첫 번째 이야기: 리치몬드 과자점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출퇴근을 하던 2년 동안 성산동에 살았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을 기준으로 망원역의 아랫 동네는 망원동, 윗 동네는 성산동이었다. 지금의 ‘망리단길’, 그 근처다.
부산 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한 지 10여 년, 나에게 서울에서 가장 ‘동네’다운 곳을 꼽으라면 나는 성산동을 꼽는다. 고층빌딩은 없고, 작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 베이커리보다 동네 밥집, 카페, 빵집들이 많은 곳. 무엇보다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동네다.
그 곳에 리치몬드 베이커리가 있다. 홍대에서 상암으로 넘어가는 길목과 성산동에서 연남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덩그러니. 찾아와 달라 사정하지 않고 ‘찾아올 사람들은 오라’는 듯 위치한, 이 곳이 성산본점이다.
리치몬드에서 브런치나 먹자.
근처에선 여기가 제일 괜찮아.
성산본점을 알게 된 건 회사 선배 덕분이었다. 13년 홍대 토박이였던 선배는 동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할 때 “리치몬드에서 브런치나 먹자. 근처에선 여기가 제일 괜찮아”라고 했다. 그 말에는 꽤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이 동네에 살면서 리치몬드 정도는 먹어줘야지’, ‘홍대 토박이인 내가 인증하는 빵집’과 같이 리치몬드에 대한 홍대인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리치몬드가 처음부터 성산동에 본점을 둔 것은 아니었다. 1983년, 리치몬드는 홍대에서 처음 빵을 구워냈다. 그 때만 해도 지하철조차 개통되지 않았다. 바로 다음 해인 1984년 ‘홍대입구’ 지하철역이 생겼고, 그 때부터 1990년대 들어서까지 홍대 일대는 부흥기를 맞았다. 먼저 홍대 미대생들을 중심으로 ‘작업실(아뜰리에)’들이 문을 열었고 그 곳에서 문화적 교류가 일어났다. 1990년대 들어서는 압구정 일대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했던 ‘오렌지족(부유한 강남 출신 해외 유학파들을 일컫던 용어)’들이 홍대로 넘어와 ‘락카페’, ‘라이브클럽’ 등의 클럽 문화를 유행시켰다.
홍대가 문화와 사람에 이어 자본이 모여드는 곳으로 바뀌는 동안 리치몬드는 같은 곳에서 자리를 지켰다. 꾸준히 장사가 잘 되어도 프랜차이즈 대신 제과기술학원과 직영점 몇 곳만을 꾸릴 뿐이었다.
자본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던 리치몬드였으나 결국 그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2012년, 리치몬드는 건물주가 한 대기업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계약을 맺게 되면서 가게를 빼야 했다. 그 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굳이 월세와 보증금을 올려가며 자리를 지켰지만, 두 번째는 어려웠다. 그렇게 홍대 부흥의 역사와 함께했던 리치몬드는 홍대 토박이들을 외곽으로 이동하게 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 되면서 또 한 번 역사의 일부가 됐다.
**최근 작은 규모의 '홍대점'이 기존과 다른 위치에 재오픈하기도 했다.
리치몬드는 동네 빵집이지만 동네 빵집이 아니다. 국내 제과 명장 3호, 권상범 명장이 처음 자신의 베이커리를 오픈한 것이 리치몬드다. 그는 국내 제과 명장 중에서도 제과, 제빵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융성한 시초 격의 인물. 일본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했고, 스위스 제과 학교 ‘리치몬드’를 졸업했다.
“빵 만드는 노동자가 되면 안 된다”는 그의 신조는 제과제빵 장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시켜서 만드는 빵보다 자신이 개발하고 선별한 빵을 고객에게 선보이겠다는 마음가짐. 그것이 리치몬드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고품질, 고가격 정책을 유지하면서 ‘프리미엄급’ 명품 베이커리가 되어왔던 토대가 아닐까.
직접 먹어본 리치몬드의 빵과 과자들은 맛이 절제된 듯 풍부했다. 밀푀유는 파이층이 잘 구워져 바삭했고, 크림은 모든 층을 하나로 만들어줄 정도로 촉촉했다.
그리고 스테디셀러이자 리치몬드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슈크림빵은 ‘슈크림빵이 이렇게 고급질 일이냐’는 생각이 들 정도. 바닐라빈 가루가 박힌 슈크림은 부드럽고 커스터드 향이 풍부했지만 역시나 달지 않았다. 슈크림을 감싸는 부드럽고 촉촉한 빵도 적절했다.
시즌 메뉴이자 최근 리치몬드에서 주력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 ‘공주 밤파이’는 밤이 가진 고유의 단맛과 향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파이는 거들 뿐’이랄까. 이외 미니 오랑쥬파운드케익과 크로와상도 모두 기본 이상의 충실한 맛이었다.
단, 빵 몇 개 집어 들었을 뿐인데 2만 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리치몬드의 빵은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풍족하게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의 훌륭한 빵을 맛보기에 좋다.
리치몬드 권상범 명장은 풍년제과, 나폴레옹 제과점을 통해 제과제빵 기술을 배웠고 자금 지원을 받아 유학까지 다녀왔다. 이후에도 새로운 제과, 제빵 기술이 나오면 언제든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그의 ‘손맛’은 큰아들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다. 현 리치몬드 대표인 권형준 셰프는 일본에서 제과, 제빵을 교육 받고 현재 리치몬드 빵공장을 총괄한다.
기술 전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권상범 명장은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제과, 제빵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포부로 아카데미를 세웠다. ‘리치몬드 제과제빵학교’가 그것. 사업의 확장이 아니라 기술의 확장, 그가 사업가가 아닌 장인인 이유다.
그렇기에 리치몬드는 동네 빵집이 아니다. 국내 제과 제빵의 명맥을 이어가는 ‘빵의 명가’이다.
**리치몬드의 인기 빵들**
슈크림빵 외에도 리치몬드를 대표하는 빵들이 있다. 사실 모든 과자, 빵류가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리치몬드이지만 그럼에도 지점마다 인기가 있는 빵 종류는 따로 있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의 지점에서 사랑 받는 빵들을 모아봤다.
독일식 케이크 중 하나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먹는 케이크 '슈톨렌', 권상범 명장이 국내에서 최초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한 원조 '밤식빵', 그리고 독일식 케이크 '바움쿠헨' 순이다.(출처: 리치몬드 과자점 공식 홈페이지)
[참고]
http://www.richemont.co.kr/Bakery/Default.aspx
http://news.joins.com/article/724520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67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