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서 인정하기
나는 40대 초반 남매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살면서 안 겪어도 되는 우울증을 다섯 번을 겪었고, 다섯 번 다 극복.. 이라기보다 흘려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남들이 볼 때 나처럼 밝디 밝은 파워 enfp 사람이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면 의아해할 것이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잘 웃고 목소리 크고 남을 웃기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내면엔 아직 자라나지 않은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고, 그나마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은 밝고 좋은 성격으로 어느 무리에서나 잘 어울리는 것이 나의 큰 장점으로 여기며 살았다. 공부도 고만고만했고, 집안 환경도 썩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저 옆에서 ”수정이는 성격이 참 좋아 “ 이 말을 훈장처럼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사회생활 초창기에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도 거절을 잘하지 못했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의 의사를 배제한 채 다른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좋은 성격으로 그 속에서 사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우울증이 온 이야기를 해 보자면,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인사발령 시기에 발령을 받아 다른 부서로 이동한 직후였다. 부서 내에서 2주 정도 적응하며 아는 동기 언니가 있어 편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나보고 팀을 옮겨야 된다고 하였다. 나는 ”왜 “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회사 내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 부서는 여자들이 많았고 이미 자기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친해져 있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그 사람도 그 무리에 속해 있는 느낌이었고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여러 번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내 이야기만 덩그러니 밖에서 맴도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입을 닫고 있었다. 그 팀에서는 나보다 어린 선배들도 있었고 그 사람의 말투나 표정이 강해 보여서 나랑은 결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업무상 필요한 부분 아니고는 일상적인 대화가 없었고, 출근하면 직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행복을 느끼던 내 마음엔 어느새 먹구름이 끼여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참고 일을 다녔다. 출근하는 날은 출근하는 대로 휴무날은 집에 있는 대로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겪는 일에 대처 방법을 몰랐고, 참고 참던 내 마음은 어느새 불면증과 함께 불안감이 가득 차 있었다.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을수록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서 멈춰야 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일단 며칠간 불안함에 못 잔 내 몸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정신과를 처음 간 날, 의사 선생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의 말투는 차분했고 다정하였다. 일단 이 사람을 믿고 따라가야겠구나 했다.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처방받아먹었고, 2주에 한번 병원을 갔는데 그때마다 상담실을 나오며, 매번 질문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 저 다시 괜찮아지겠죠?”
병원을 간 후 나는 휴직계를 내었다. 직장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유로 내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얼굴을 보고 어느 정도는 짐작했으리라. 나의 적응 못하는 나약함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수십 번 생각하며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더 힘들어졌고,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인정해야 했다. 이 고통을 벗어나려면.. 그리고 잠도 자의로 자지 못하고 약을 먹어야 잘 수 있는 나 자신을, 이해하기로 했다.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제일 처음 한 것이 이 불안하고 나약한 모습도 내 모습임을 인정하기였다. 그리고 안아주기였다. 약을 정해진 대로 잘 복용하며 입맛이 없지만 잘 챙겨 먹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매일매일 밖으로 나갔다. 햇빛을 쬐었고, 많이 걸어 다녔다. 또한 의사 선생님이 나 같은 “재발성 우울증”은 평소에 에너지 관리를 잘해야 된다고 하였다. 기분이 좋다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그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고갈돼 버린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평소 내 에너지가 매일매일 솟아나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면 야간 근무가 있는 날에도 자지 않고 그 일에 파고들며 시간을 보냈다. 지친 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나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나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
다섯 번의 우울증을 흘려보내고 나는 다시 상담 차 병원을 찾았다. “앞으로 다시 우울증이 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
도파민,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올 수 있으니 비타민D를 챙겨 먹으며 관리를 잘하고, 평소에 규칙적인 생활하기, 잠 잘 자기, 밥 잘 챙겨 먹기, 햇볕 쬐기, 술 먹지 않기. 이 다섯 가지를 실천을 하면서 살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우울증이 올 것 같으면 처방받아 놓은 아침약부터 빨리 먹으라고도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 예전 같이 살지 않는다. 내 에너지, 기분을 관리하면서 살고 있다. 피곤하면 많이 자고, 과도하게 여기저기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도 하고 남편, 아이들도 챙기고 여유롭게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 결과로 최근에는 5명의 작가님들과 함께 쓴 “삶에 대한 옹호”라는 에세이책도 출간하게 되었다. 결과물이 있어 좋다. 항상 시작만 하고 결과가 없던 내 삶에 하나하나 차근차근 소복이 결과물이 쌓이고 있다.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에 감사하다. 내 의지대로 잠을 청 할 수 있고, 포근히 잠들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예전처럼 불안한 마음 없어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출근할 직장과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들과 다정한 남편이 있어서 감사하다. 좋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잘 흘려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 자신에게 제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