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울증 보고 마음의 감기래
내 나이 42살..총 다섯번의 지나가는 우울증을 겪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고. 감기는 약 먹으면 낫잖아. 그리고 이렇게 지독하게 괴로울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평소 성격이 파워E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격의 없이 친해지는 편이었고, 스몰톡 보다 빅톡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말하다가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면 고주파를 뿜으며 웃는다. 웃고 울고 내 감정 표현에 거짓 없는 사람. 그게 나다.
다섯 번의 우울증. 우울증이 오면 불안증도 함께 손을 잡고 왔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했고, 누군가 옆에 있어주면 조금은 괜찮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평소와 180도 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 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번 온 우울증은 짧게는 한달, 길게는 8개월 정도면 끝이 났다. 하지만 두렵고 무서웠다. 우울증이 올때 전조 증상을 겪었던 나는 불면증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울증이 시작되는 것을 무겁게, 겨우겨우 받아 들여야 했다. 또한 몇일씩 뜬눈으로 밤을 새다가 잘 다니던 직장에는 갑작스럽게 휴직을 신청하곤 했다. 평소 나의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저렇게 밝았던 사람이 갑자기 휴직을 낸다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들 어쩔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들을 일일이 신경 쓸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빠르게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쉬어야 했다. 몇일씩 불안함에 잠 못 이루다가 꾸역꾸역 출근을 하면, 출근하는 아침 지하철 역안에서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입안에는 쓴 맛이 났다. 점심때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동떨어진 사람 같았다. 평소와 다르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괜찮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머릿속엔 더 불안함만 커져갔다. 또한 밥을 먹는데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다. 하루 종일 배도 고프지 않았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행복해 하던 나는 입맛을 잃은 내 자신을 마주하고는 크게 절망 했었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멘탈이 약한 사람이었을까.. 다 나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나는 더 심연의 끝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잠을 몇일씩 못자서 정신과를 처음 가게 된날, 집 근처의 개인 정신과를 가게 됐는데 들어가는 그 건물이 왜 그렇게 회색빛으로 보였는지, 또한 병원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엔 나랑 똑같은 사람들인데 거기 앉아 있다는 이유 만으로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를 생각하니 이상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의사의 말을 통해 우울증이 단지 나의 약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호르몬의 불균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우울증은 ‘재발성 우울증‘이었다. ’내인성 우울증‘이라고도 하며 특별한 외부 요인이 없이도 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평소의 나는 이것저것 활동 하는 것을 좋아해서 근무 시간이 끝나고도 도통 쉬지를 않았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고, 그 시간들이 나를 숨쉬게 해준다고 믿었다. 나를 성장 시켜주는 자양분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의사는 말했다.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하려면 뇌에서 도파민이 나올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는데 나올 물질들을 이미 다 소진해 버렸다고.. ‘도파민’은 의욕과 같은 말인데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다. 행동 하는 것은 뇌에서 도파민을 자극해서 나오는 것인데 뇌에서 우울하다는 것은 그만큼 의욕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받아 들여야 했다. 힘들고 아프지만 이 모습 또한 나의 모습임을 인정 해야했다. 휴직을 내고 집에서 쉬면서 처방받은 약을 잘 챙겨먹고 남편과 함께 아이들 등원을 시켰으며, 하루종일 누워있고 싶었지만 매일 매일 산책을 나갔다. 남편과 함께 공원을 걸었고, 남편이 출근한 날에는 집 근처의 작은 산을 오르며 몸을 움직였다. 인생의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위기 앞에 쓰러지지 않고 조금씩 일상생활로 돌아오려고 했다. 다시 밝게 웃는 내 모습을 나도 남편도 간절히 바랬다. 교대 근무인 남편이 야간근무를 간 날이면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가 남편이 출근한 시간이 맞춰 우리집에 와서는 첫째가 잘때까지 옆에서 놀아주고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는 힘든 시기에 내 옆에 있어 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시간들을 버텨내야 했다. 이번 일로 알았다. 우울증이 오면 거기에 맞서서 싸운다는 마음보다는 그것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그저 납짝 엎드려 그 시간들을 그저 차분히 흘려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해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거나 왜? 라고 묻는 대신에 그저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옆에 있어 주었다. 내 친한 친구는 결혼 전 우울증이 와서 내가 직장에서 버티기가 힘들다고 했을 때, 지금 당장 짐을 싸서 자기집에 와서 지내면서 출퇴근을 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주말에 문을 연 정신과 병원을 찾아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동행해 주었다. 퇴근을 하고는 같이 동네를 여기저기 걸어 주었으며, 내가 함께 포켓볼을 했을 때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면 함께 포켓볼을 치러 다녀 주었다. 그리고 본인이 출근 했을 때 내가 먹을 수 있도록 컵밥을 부엌 한켠에 여러개 사두고는 출근을 했다. 나의 나약함 앞에 친구는 안절부절 하지 않고, 오히려 대장부 처럼 나를 지켜 주었다.
끝이 없던 어두운 긴 터널에 갖혀 있던 내 마음도 어느새 서서히 밝게 빛나는 빛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결혼 전 갑자기 왔던 우울증도 결혼 후 왔던 세네번의 우울증도 좋은 친구와 남편이 있어 잘 지나왔고 회복이 되었고 다시 복직을 하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내 인생의 근사한 철학 같은 건 없지만, 내 옆에 있어 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 온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