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말 듣길 잘했어
한번씩 아이가 하는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을 때가 있다. 오늘 네 살 딸아이의 말이 그랬다.
첫째를 하교시키고 이어서 둘째 딸을 하원시켜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의 20분 남짓한 우리의 대화는 온갖 주제를 넘나 든다.
첫째가 “엄마 엄마 오늘 독서 토론시간에 가위손 영화 봤어. 시간이 없어서 반 정도밖에 못 봤어~”
“아~ 그래? 그 영화 보니까 어땠어? 느낀 점 있어?”
“아니, 그냥.. 모르겠어”
방과 후 활동 시간에 영화를 봤다는 게 좋았단 건지, 느낀 점은 모르겠다는 내 아들..
“엄마~ 오늘 아침에 어린이집 가면서 아이스크림 집에 갈 때 사주기로 했잖아~~ 그거 지금 먹으러 가는 거지?” 먹는 약속은 찰떡 같이 잘 기억하는 내 딸..
두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집 건너편에 위치한 무인편의점 가게 앞에 차를 잠깐 대었다. 차에서 내려서 신나게 달려가는 남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뒷모습에서도 행복한 향기가 폴폴 나는 것 같았다.
첫째가 고른 빵빠레 아이스크림과 둘째가 고른 월드콘. 첫째에게 카드를 건네고 계산하는 법도 알려 주었다. 스스로 계산한 자신이 뿌듯한지, 계산하면서 둘째에게 바코드 찍는 법이랑 카드 넣는 법을 차례차례 알려주며 오빠미를 발휘했다. 그 옆에서 둘째는 “오빠 진짜 잘한다~ 정말 멋져”라고 하며 오빠의 자신감을 더 높여 주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낯간지러워서 못하는 말들이 있다. 당신 참 멋있다. 예쁘다.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등등. 아이들은 맑은 눈으로 그리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 말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 둘째 딸은 내가 어디 부딪치거나 내 손가락이 긁힌 것을 보면 “엄마 괜찮아? 많이 아팠겠다. 내가 호~ 해줄게. 호~~ ” 그런 말들로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고 많이 배운다. 나도 저런 말들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많이 해줘야지.
아이스크림 두 개랑 내 것까지 고르라는 성화에 초코 빵빠레를 하나 더 집어 들고는 아이들에게 집으로 가자고 차에 타라고 했다. 그랬더니 둘째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우리 가게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먹고 갈까?”
“아니~ 집에 가서 씻고 저녁 먹고 정리하고 자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으니까 집으로 바로 가자. 그리고 여기 의자랑 테이블 치워 버려서 없네~“ 가게 유리창을 통해 밖을 한번 보고는 내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는 가게 문을 열고 꼼꼼히 살펴보던 둘째가 말했다.
“엄마! 여기 의자 세 개 있잖아. 먹고 가자”
밖을 보니 의자 세 개가 내 시야에 보이지 않게 가게 바로 앞에 쪼르륵 줄 서 있었다. 그렇게 까지 하니 여기서 안 먹고 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혼자 의자에 못 앉는 둘째 케어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흘리면 치워야 되는 것들이 귀찮아서 거절했지만, 그것들이 무색하게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가게 앞 도로에서 달리는 차들을 보며 셋이 차례로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할짝할짝 먹었다. 아이스크림은 달고, 아이들의 웃는 얼굴은 더없이 이뻤으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내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디서 스쳐가듯 본 글귀가 있는데,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낭비한 시간”이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셋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셀카도 찍고, 아이들의 미소를 마음에 한껏 담았다. 그리고 그 셀카를 일 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송했다. “이 것이 행복 아니겠니” 남편의 대답도 사랑스러웠던 그날 오후.
해가 조금씩 지던 구름의 색과 우리 앞을 달리 던 도로의 차들과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 이것 말고 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의 인생에.
둘째 아이의 제안으로 그날 우리는 우리들만의 소확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라고 다 맞는 말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라고 다 어리고 생각이 얕다고 할 수도 없다. 오늘도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하며 이런 시간을 선물해 준 둘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음에도 아이스크림 사서 앉아서 먹고 가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