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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파트너 Oct 03. 2024

납치되지 않으려고

비상벨이 울립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 정신없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이유는 뭔지 모릅니다. 비상벨이 크고 시끄럽게 울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그냥 반응합니다. 


비상벨이 꼭 필요할 때 울렸다면, 건물을 빠져나간 사람들은 안도할 것입니다. 

비상벨이 아무 이유 없이 울렸다면,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도록 점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비상벨이 시도 때도 정신없이 울린다면,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지겠지요. 


그런 비상벨이 사람 안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편도체'

편도체는 감정과 기억을 저장한다고 합니다.  저장해 놓은 것을 기준으로 외부 상황이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이때 몸은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면서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직면하게 되었을 때, 편도체가 비상벨을 울리면서 뇌 전체를 지배해 버릴 수 있다고 하는데요.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이 이러한 현상을 '편도체 납치', '감정의 납치'라고 명명했습니다.

뇌에서 비상벨이 울리면 혼란, 자기 의심, 통제력 상실, 감정적 고갈 등이 생긴다고 합니다. 


비상벨이 울렸을 때 저의 상황을 보면, 

심장이 빨라지는데,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들고, 동공이 커지고,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덜덜 떨렸습니다. 두 다리는 뻣뻣해지면서 굳어버리는 것 같았고, 생각이라는 것은 할 수 없는 마치 동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작동이 멈추게 됩니다. 

시끄러운 비상벨이 조금 사그라진다고 해도 딱딱해진 심장으로 들숨과 날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온몸이 작아지고 점점 소멸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편도체에 납치가 된다는 것은 일상의 마비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도체가 없다면, 즉 비상벨이 울리지 않는다면 납치되지 않을까요?

뇌과학자들이 편도체와 관련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바로, ‘원숭이의 편도체 절제술’

원숭이들은 뱀을 두려워 하지만, 편도체가 제거된 원숭이는 뱀에 두려워하거나 위험한 존재라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뱀에게 물릴 위험이 있는데도 뱀에게 다가가서 만지고 쓰다듬으며 같이 놀았다고 합니다.

쥐의 편도체를 제거했을 때에도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고양이에게 다가가 귀를 물어뜯는 상황도 있었다고 합니다. 


건물에 비상벨이 있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안전을 위해서죠. 

뇌 안에 있는 비상벨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비상벨이 너무 시끄럽게 작동되도록 놓거나 비상벨이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비상벨 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비상벨이 너무 자주 울리지는 않는지 점검합니다. 

의도적으로 호흡을 늦추고, 대놓고 한숨을 크게 쉬고, 비상벨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수시로 동상처럼 멈추어버리기도 하고, 

딱딱해진 심장이 갈라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긴장감이 증폭되기도 합니다. 


뇌에서 비상벨이 울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신없이 혼란스럽게 납치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기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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