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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Feb 13. 2024

4개월 아기와 당일치기 거제 출장이 가능하다구요?

아기와 함께하는 출장의 기록 이번 편에서는 무려 거제를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전에서 거제 당일치기 출장이었어요.


여러분은 거제도에 가보셨나요? 제 기억에는 딱 두 번 있는데요, 한 번은 대학원 석사논문 심사에서 통과한 여름, 같이 논문을 썼던 연구실 절친과 함께 통영과 거제도에서 늦여름을 보냈었어요. 두 번째 기억은 2018년이예요. 저와 남편, 첫째 이렇게 세 식구이던 시절에 제가 박사논문 심사를 통과한 겨울 거제에 1박2일로 놀러갔었어요. 그러고보니 모두 논문 심사를 통과한 후에 놀러갔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어쨌든 저에게 거제는 멀고 먼 휴양지였습니다. 거제의 기억이라면 몽돌 해변, 돌고래 쇼, 김영삼 대통령 생가 등 관광지 위주예요. 


그런 거제를, 출장으로 다녀와야 했습니다. 그것도 4개월 아기를 데리고요!! 출장 기록 글이 네 번째인데, 처음부터 네번째까지 막내는계속 4개월이었어요. 여러 번 다녔으니 익숙해지긴 했지만 거제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지역 맘까페에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대전에서 거제까지 하루만에 다녀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차도 아니고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려면 힘들 것 같아요.'

'휴가 때 아이 데리고 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당일치기로는 힘들지 않을까요?'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갔다와야 했어요. 어떤 대중교통 편을 이용하든, 아무리 빨리 갔다와도 왕복 8시간은 걸릴 듯 했어요. 분유도 안 먹는 아기를 그 시간 동안 친정엄마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나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어요.


'일단 그냥 가보자.'


네이버 길찾기를 해보니 대전복합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코스를 추천해주었어요. 고속버스는 기차에 비해 수유나 기저귀 갈이가 불편하고 아기가 울면 일어서서 안고 달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거제는 기차로 가려면 부산이나 진주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늘어나 선뜻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되진 않더라구요. 평일 오전에 대전에서 거제까지, 밀리지 않는다면 자차를 탄 것 같은 이동속도로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거제 출장 날,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그걸 타기 위해 집에서 컴컴한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택시를 타고 복합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아기는 아기띠에 안겨 잘 잤습니다. 


아침 일찍 고속터미널에 와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아니, 그런 적이 있는지도 의문이네요. 따듯해지는 아침 봄 공기 속에, 터미널에 들어서니 특유의 터미널 냄새에 어쩐지 마음이 설렜습니다. 비록 4개월 된 아기를 안고 거제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예요. 


터미널 내에서는 이런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어요. 미국 모 작가의 작품이라는데,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의자와 테이블 세트였어요. 긴장되는 출장길이었지만 미술작품을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네요. 



대전 복합터미널에서 거제 고현 터미널까지 가는 티켓입니다. 

이른 아침, 한산한 대전 복합터미널의 풍경


시외버스 거제행 타는 곳을 찍어보았어요. 

드디어 버스에 오릅니다~ 대전 복합터미널은 다른 터미널(청사, 도룡, 북대전 등)에 비해 규모가 크고 다양한 지역의 버스들이 있어요. 쭉 늘어서서 전국 각 지역으로 가기 위해 대기중인 버스를 보니 저도 괜히 마음이 설렜네요. 


오전 7시반, 대전에서 거제로 가는 승객은 많지 않았어요. 저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습니다. 널찍하고 편하게 갈 수 있었어요. 아기띠에서 아기를 내리자 아기는 앉아서 잠시 놀았어요.

그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따라 잠이 들었어요. 


버스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또 남쪽으로 달렸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통영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어요!! 대전에서 거제로 가는 버스는 중간에 통영을 많이 들르는 것 같았어요. 4월 말, 통영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쩐지 10여년 전, 연구실 절친과 함께 통영 바닷가를 자전거로 달리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살랑살랑했네요. 


통영 터미널에 잠시 정차했을 때예요.

통영에서 거제로 가는 중. 차창 밖으로 남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해 바다를 보니 또 마음이 설렜습니다.


아가는 계속 잘 잤어요. 이만하면 대전에서 거제까지 4개월 아기와 대중교통으로 오는 것,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 생각은 그때까지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거제 고현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버스 밖으로 나오니 일단 거제까지 무사히 왔다는 생각에 벅찬 마음이었어요. 터미널에서 나와 택시를 탔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어요. 아기는 택시를 타자마자 울기 시작했어요. 15분 정도 이동을 했는데, 내내 아기가 우는 바람에 기사님께도 죄송하고 저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기는 택시에서 내려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어요. 


이날의 출장지는 거제시 옥포동의 어린이집이었어요. 어린이집을 찾아가 무사히 원장님과 실습생을 만났습니다. 여러 곳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고 출장을 가면서 느낀 점이라면, 원장님들은 정말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아마 아이를 좋아하는 분이 원장님이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잠깐 방문하는 사람의 아기인데도 '원장님한테 한번 안겨보자' 하며 예뻐해 주셨어요. 그곳에서 기저귀까지 갈고 나왔답니다. 


출장 업무를 마치자 긴장감이 풀렸어요. 


'거제까지 와서 가장 중요한 일을 잘 해결했으니, 이제 옥포국제시장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가야겠다'


그동안 수원, 김포, 일산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매번 시간에 쫓겨 식사 때를 놓친게 아쉬웠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거제까지 왔는데 무조건 맛집에서 먹고 가고 싶었습니다. 아직 정오가 되기 전, 붐비지 않는 옥포국제시장을 거닐다가 문이 열린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시킨 음식은 보말 칼국수였어요. 거제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시켰는데, 결과는 그냥저냥이었어요. 보말이 뭔지도 몰랐는데, 바다에 사는 고둥이라고 하더라구요? 보말이 들어간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인데 식감이 저에게 맞진 않았어요. 


현지 사람이라면 진짜 맛집을 알텐데... 아쉬웠지만 따듯한 한 끼를 앉아서 먹었다는 것 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아기는 오른쪽 무릎에 앉혀 놓으니 가만히 앉아 놀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시내 버스를 타고 고현 버스터미널로 돌아왔어요. 


거제 고현버스터미널은 작고 수유실도 없었어요. 일단 대전으로 출발하는 가장 빠른 버스를 탔습니다. 오전과 달리 점심이 지난 시간, 거제에서 대전으로 오는 승객은 꽤 많았습니다. 버스에 빈 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였어요. 


이 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막내가 울기 시작했는데 쉽사리 달래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여기저기 출장에 데리고 다닐 때마다 순하게 따라와주던 아기인데 무슨 일인지.. 어르고달래고 아무리 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승객이 많은 고속버스 안, 고요한 가운데 아기 울음소리만 크게 들리니 정말이지 죄송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뒤돌아 보시며 막내에게 말을 거셨어요.

"아가야 까꿍~" 

갖고 계시던 생수병을 흔들며 여러가지 소리도 내며 아기가 울지 않도록 얼러 주셨어요. 할머니의 말에 막내는 잠깐 울음을 그쳤지만 이내 다시 소리내며 울었어요. 

"아가가 배고파서 그런가? 바나나 있는데 먹여볼래요?"

라며 바나나도 주셨습니다. 아직 이유식도 시작하지 않은 때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먹여보았습니다만, 효과는 없었어요. 진땀을 내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말이지 시간이 더디게 흘렀어요. 


'세 시간을 가야하는데 어떡하나.'


드디어 버스가 휴게소에 섰어요. 버스에서 내려오자마자 휴게소 수유실로 갔습니다. 가보니 아기가 기저귀에 응가를 해놓았네요. 그래서 버스에서 그렇게 울었나봅니다. 버스 안에서 기저귀를 갈 수도 없었으니, 미리 알았더라도 어찌 할 수는 없었어요.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자 아기는 다시 순둥이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버스에서 아기는 드디어 잠이 들었고, 저도 기절하듯 잠들었어요. 대전에 도착하기 약 30분 전이었습니다. 2시간 반을 진땀흘리며 온 것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라도 편하게 올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크게 와닿았어요.




드디어 다시 대전 복합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리는데 승객 몇 분이 

"고생 많으셨어요."

라고 말해주시더라구요. 위로의 말씀을 들으니 울컥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기 울음소리에 시끄러웠을텐데 이해해주시니 고마웠어요. 


대전에 도착한 것은 오후 네 시였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이곳에서 버스를 탔는데, 무사히 업무를 마치고 대전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대전 복합터미널에 내려서 또다시 수유실로 직행했습니다. 수유실은 이렇게 생겼어요. 


기저귀 갈이대에 누운 막내. 고생 많았다 아가야~



두 손을 모으고 있는게 정말 귀엽지 않나요?

수유실에서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고 나와서, 토스트를 사먹었어요. 


이렇게 한 건의 출장을 막내와 함께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2023년 4월 21일,

막내 4개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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