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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May 05. 2022

닭발, 내 감정보다 더 매콤한 나의 소울 푸드

닭발, 내 감정보다 더 매콤한 나의 소울 푸드


소울 푸드. 사전적 의미로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또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내게 소울 푸드를 묻는다면 나는 어김없이 숯불 닭발을 말하곤 한다. 그래서 닭발은 어디가 맛있냐는 질문을 추가로 던져 준다면, 수원 어디 골목의 무슨 집인데 거기는 무슨 요일에 쉬고 몇 시엔 닫는지 냉장고 안엔 무슨 소주가 있는지, 무료로 주는 양배추 샐러드는 무슨 맛인지까지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다. 


대학 신입생 시절, 닭발이 먹을 수 있는 부위인지도 모르던 나를 수원까지 데려가 먹여 줬던 친구 덕분에 알게 된 집이다. 자퇴와 졸업으로 소속이 달라진 지 10년이 훌쩍 넘은 우리에게 ‘단골집’이라는 마지막 공통점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아주 고마운 집이기도 하다. 때마침 수원으로 이사하게 된 내 상황을 떠올려 보면, 과장 조금 보태 그 닭발집과 나는 만나야만 했던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손 모양과 비슷해 징그럽기까지 한 닭발. 매번 닭발을 찾는 이유는 그와 함께 따라오는 소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허한 날일수록 유독 매콤한 닭발이 생각나는 걸 보면 이유가 소주뿐은 아닌 것 같다.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만들어 냈던 작품이 교수님의 입에서 구겨져 버린 날이라거나 처음 애인과 헤어지던 순간, 애써 옮긴 회사의 환경이 생각과는 너무 달라 좌절하던 그 밤까지도. 그렇게 스무 살부터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수원 구석의 그 닭발집은 그 자리에서 나와 친구를 기다려 줬고, 사장님은 늘 그날 우리의 감정보다 한 숟가락 정도 더 매콤한 닭발을 내주셨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 나와 함께 동네를 지킬 것만 같던 그 친구가 시집을 가 아기 엄마가 되었다. 월급을 날려가며 먹었던 안주 사진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톡방은 아기가 우는 모습, 아기가 걷는 모습, 아기가 뛰는 사진으로 가득 찼다. 서울에서 부산도 반나절이면 움직일 수 있는 요즘, 어디든 서울과는 가깝다지만 수원은 돌 지난 아기 엄마에게는 큰 마음을 먹어야지만 올 수 있는 곳이 되어 있었고 자연히 우리의 닭발 회동은 잠정적 중단 상태에 돌입했다. 


사실 단골 닭발집은 다른 사람과 함께도 갈 수 있고, 혼자라도 가서 먹으면 된다지만 이상하게도 그 닭발은 그 친구와 먹어야만 내가 알던 그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어 그 근처로도 가지 않았다. 그 친구가 없이 나만 그 닭발집을 간다는 건, 삶의 모습이 너무 달라져 버린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메신저에 생일 알람이 뜨면 기계적으로 축하 선물을 보내고, 잘 지내냐는 질문엔 언제나 비슷하게 대꾸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오늘 수원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퇴근하고 그 집에서 볼 수 있냐고. 반갑게 달려간 수원의 닭발은 기대보다 더 맛있었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큰 소리로 깔깔대며 떠들 수 있었다. 


그렇다. 사는 세상이 달라지면 좀 어떤가, 이렇게 시간 맞을 때. 아니 시간 맞춰서 만나면 되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거 먹으면 또 같이 지내는 거지. 닭발 한 접시에 소주 한 잔에 서운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닭발에는 마음을 너그럽게 해 주는 특제 양념이라도 발려 있는 모양이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매일같이 함께했던 저녁 시간, 오늘의 나는 회식자리에서 먹기도 싫은 삼겹살을 끝없이 굽고 너는 아기 이유식을 만들고 있더라도 그게 뭐 어떤가. 우리가 깔깔대며 매일을 공유하는 대신 만날 때마다 숙제하듯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의 사정에 쫓겨 서둘러 헤어지더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여전히 만날 때마다 콧물이 나올 정도로 매운 닭발에 콘치즈를 올려 나눠 먹고, 투명한 소주잔을 깨지기 직전까지 부딪히며 스트레스를 푼다. 아마도 나의 소울 푸드는 앞으로도 꽤 오래 나와 친구의 의리를 지켜줄 것 같다. 


아 참, 친구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최근에 큰 수술을 했다. 그녀의 후속 치료 기간 동안 당연히 술을 마실 순 없어서, 나도 함께 닭발과 소주를 중단하기로 했다. 요즘 여러모로 식당 운영이 어려운데, 굵직하게 술을 팔아 주던 우리가 안 가는 동안 사장님의 생계가 어려워질까 걱정이다. 이 글이 유명해져서 수원 전역의 모든 닭발집이 장사가 잘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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