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는 퇴사 중 [下] by 느영나영
회사에서 행정상 제출을 해야 하는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서 내야 했다. 내가 겪었던 복합적인 상황과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배경에 대해서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라는 말처럼 떠나는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었고 사직서를 쓰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 주저리 설명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사직서를 송부하면서 조직 내부자들의 귀에 대고 ‘ 과연 이게 나의 희망 퇴사로 만 봐야 할까요? ’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치고 싶었다.
대부분 서류상 퇴사의 이유는 개인적 사정, 사유로 귀결된다. 계속 사직서를 수정 저장하면서 끝내 일신상의 이유로 써서 내버린다. 하지만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느끼면서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곳을 떠난다. 무언가에 의해 떠밀려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쉽게들 희망 퇴사와 이직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퇴사 밖에 방법이 없다 생각해 선택했고 더 이상 못 버티겠어서 떠났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고, 나의 아픔이 그저 개인적 사유나 부주의로만 생각된다는 느낌이 들고 아픈 와중에도 일을 이야기하고 생각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간과 일만 생각하는 워커홀릭이 되어버린 나에게 ‘STOP’ 버튼과 쉼이 필요했지만, 뭔가 적응을 못하고 뒤쳐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아등바등 일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
확실히 건강의 적신호는 나의 상태를 명확히 알려준다. 젊은 나이에 겪지 않을 질병에 걸렸다. 작년에 회사가 재정이 어렵다고 해서 노동조건을 변경하고 계약서를 수정하게 되었고, 내 월급과 비스므리한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용역단체가 건강검진표를 요구했다. 그 덕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내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거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회사에 말씀을 드렸고 나는 일은 해야 했기에 차일피일 치료를 미루어지게 되었다. 휴가를 신청하고 얻는 과정에서 내 상황을 고려해주십사 요청드렸고 우여곡절 끝에 조금 긴 휴가를 얻게 되었다. 그래도 계속 일에 신경 쓰게 되고 휴가임에도 마음이 엄청 불편했다. 일은 되게 해야 한다는 일중심 사고, 멋지게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나 책임 때문인지 모르겠다. 휴가임에도 일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뭔가 쉬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만 같았다.
하루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아파요.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죠 뭐. 사는 게 그렇지’ 나는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몸이 아프고 나니 내가 많이 받고 있었구나를 느꼈다. 스트레스의 주원인은 바로 회사에서 있는 관계들, 일들이었다. 조직 안에서 소통도 되지 않고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아닐 거야. 좋은 사람들이야.’라고 계속 부정했다. 내가 사회생활과 일을 잘 모르고 너무 많은 걸 바라는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회사도 어렵고 다들 바쁘고 힘들게 일하니까 라고 이해하려 했다. 아프고 나서 버겁게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회사의 재정상 어려움은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고 조직 안에서 그 누구도 함께 일하고 있는 나를 기억되거나 생각되지 않음을 확실히 느꼈다. 무례했던 조직과 상사, 동료들에 대해서 격렬한 감정과 생각이 들면서 회사 안에서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 고슴도치 한 마리 ’가 혼자 노오력하며 일하고 뭔가 이상하고 잘 맞지 않는 공간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캔디처럼 존버 하고 있었다. 사실 나 자신을 내팽개쳐놓고 누군가를 위해, 일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한때는 일을 하고 바빠 보이는 것이 멋져 보였다. 뭔가 역할을 하고 책임을 가지고 한다는 거에 소속감도 느끼고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조직은 항상 어렵다고 말하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이 밀려왔고 우린 팀원으로 협업을 하며 일을 해나간다. ‘일이니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에 얽매여 지내고 공을 들여 열심히 해내야 한다. 또 일 뿐만 아니라 조직생활도 어렵고 힘들어도 사회초년생,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함께 일해야 하기에 참고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많이 오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사직서를 수정하고 저장해둔다. 그러면서 나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며 일을 하고, 나 자신은 점점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갔다.
퇴사를 고민하게 된 수많은 단절 점 중 ‘나 상태 안 좋음’을 깨달은 일이 있다. 하루는 퇴근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다음날 출장이 있음에도 술이 날 마시는지 내가 술이 마시는지 모를 정도로 술을 마셨다. 대책 없이 술을 마시고 엄청 흐트러진 적 없었던 내가 그날 탄탄대로 길바닥에 슬라이딩하며 뽀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얼굴 오른쪽 광대는 까져서 빨개져있고 안경은 부러져있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출장을 가 일하는 내 모습이 안 쓰러워 보이고 짠내 났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지만 참 버거워 보였고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직장에서 일이 나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일을 할 때 수란과 딘의 1+1=0 노래를 많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너를 이해해. 철저히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추천한다.
SURAN - 1+1 = 0 (feat.DEAN)
https://www.youtube.com/watch?v=YA6G74gk6R8
(여유가 없어 여유가 없어 여유가 없어 없어 없어 여유가)
다들 왜 이래 뭐 땜에 이래 힘 좀 빼 hey hey my baby
일 주 내내 일에 얽매인 채 삐걱대 hey hey why baby
페북을 둘러봐도 인스타를 둘러봐도 관심에 메말라 갈 뿐
알겠어 청춘인 건 근데 좀 버거워 보여 이대로 괜찮을까요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So how bout you So how bout u
일을 해 아니 일이 나를 해
everyday same day 놀자 하니 이젠 노는 법도 모르겠어 Am i crazy whoo
woo 따져보자 엄밀히 어 넌 왜 일에만 공 들이지
해와 달 낮과 밤 세상 만물엔 다 밸런스라는게 있으니
넌 좀 쉬어야 돼 이미 yeah 달고 사는 아스피린
고진감래 다 헛소리지 yeah Just take a little time Relax ur mind yeah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나영
1+1 = 0 and i'm still young
이젠 좀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just chill Just chill Just chill
시간이 약이라면 그게 언제인지 알려줘 일에 내 팽개져있던 진짜 나를 찾고 싶어 hey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1+1 = 0 and i'm still young
이젠 좀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just chill Just chill Just chill
어느 순간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라는 말처럼 멋지게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랐고 그렇게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난 사회생활과 일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서 몸과 마음도 다쳤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휴가를 보냈지만 나는 아직도 일하는 중인 것 같았다. 몸, 마음도 상태가 안 좋고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날 힘들게 한 상황을 변경할 수 있는 결정권/권한이 없다는 걸 직시했고 ‘그저 아픈 채 익숙하게 일할 뿐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나아질 수 없음.’를 느꼈다. 그렇게 황급히 비상구를 찾아 나가듯이 퇴사를 했다. 사회초년생으로 젊은 나는 일터에서 다 소진, 소모되어서 태워져 도망치듯이 나가게 된 것 같았다. 퇴사를 하면서 사회생활, 일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