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보트가 4차 출항을 시작했다. 말이 '보트'이지 진짜 배에 타는 것은 아니다. 작업을 위한 보트, 워크보트는 한 달에 한 편, 연대와 협력에 대한 글을 쓰면서 3개월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주로 온라인으로 만나고, 오프라인은 출항 중 1번은 만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망망대해에 띄워질 배에 함께 탄다는 느낌이 왠지 만져지듯 구체적이다.
땅을 벗어나 발을 딛을 수 없는 바다 위에 떠가는 감각.
자유다. 육지에서는 왠지 망설여지는 새로운 시도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거침없이 생각나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바다 위에는 누가 뭐랄 것 없지 않은 가. 게다가 바다 위 나에게는 이런 나를 이해해주고 아끼는 승선한 다른 멤버들이 있다. 멤버들은 각자의 글를 쓴다. 글 외에도 출항기간 동안 서로의 이런저런 시도들을 관심있게 봐주고 응원과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합평에선 서로의 글에 고치면 더 좋을 부분, 동의안되는 부분을 짚어 서로에게 도움이라고 던진다. 내 글에 던지는 그 말들이 다 달콤하진 않지만 관심이 담긴 솔직한 평들에 '아- 그렇게 나쁘진 않구나, 다시 고쳐쓸 수 있겠다' 용기를 받는다.
배가 폭풍우를 만나거나, 고장나지 않는 다면 우리는 정해진 항해기간 후 안전한 곳에 정박하게 된다. 선원들은 정박에 안도하며, 간단한 선원회고를 하고 미련없이 각자 가고 싶은 골목사이로 흩어진다. 정박기간 중에는 선원의 의무(밖으로 송출하는 글을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정박지에 자유롭게 지내다가 다시 승선할 시간이 되면 집결지로 모여 다음 승선에서 준비할 것을 함께 준비한다. 정박지에서 하선을 결심하는 선원도 있다. 하선할 선원은 나머지 선원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안녕을 고한다. 아마 서로 헤어지기 아쉽지만, 그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 거라 느긋이 생각하는지 별 질척임은 없다.
연대와 협력을 배울 수 있는 사례와 방법을 탐구하고자 워크보트를 시작했지만, 막상워크보트는 최소한의 협력일지도 모른다. 워크보트에서는 함께로 인해 누군가가 큰 책임을 져야하거나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 선원 각자의 일(글쓰기)은 오롯이 각자 몫이다. 자기가 배 위에서 몸을 움직인 만큼 괜찮을 글을 자기 보따리에 넣어갈 수 있으니, 누가 일을 덜했네 더했네 불만도 없다. 워크보트는 그렇게 최소한의 함께이다.
그런데 요즘 워크보트에서 다른 마음이 든다. 좀 더 내가 연대의식을 더 많이 얹어 보면 어떨까? 좀 더 힘을 들여봐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제주에서 멤버들을 만나고 난 뒤다.
제주에 간 건 우연이었다. 지난 출항 마지막 합평날 서로 근황토크 하다가, 제주에 갈 일이 생긴 사람, 제주에 사는 사람이 둘이 모일 수 있으니, 나머지 멤버도 가서 함께 만나보자라는 얘기가 나왔다. 호기롭게 던진 그 얘기가 진짜가 되었다. 평일 3일! 크다면 큰 결심을 세우고 나니, 물비늘이 무엇이 하고 싶은지 서로 그냥 막 말해 보자고 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지니는 제주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보희 작가와, 뮤지션 하림의 미디어아트를 추천했다. 콜! 뼛속까지 기자 롱롱은 기사거리를 원했고, 제주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속속 알고 있는 물비늘이 가파도 위대한 백수들을 만나볼 것을 추천했다. 콜! 액티비티가 필요다는 마리, 우정의 요청은 지니의 "제주 바다 액티비티 책에 들어있는 왜 있잖아 그거, 스노클링" 발언으로 구체화 되어, 물비늘이 가르쳐 주는 스노클링 시간이 되었다. 콜!
설렜다. 혼자의 여행에도, 어떤 연인과의 데이트에도 이렇게 하고 싶은 거 다 말해보고, 어디 한 번 해보자라는 긍정이 충만했던 적이 없었다. 또, 이렇게 다채로운 아이디어도 없었다. 늘 가던 곳, 내 취향, 내 스타일은 좋지만 조금 뻔했기 때문이다. 막판에 코로나로 참석 못한 선원 한 명을 제외하고, 3차 출항 선원 모두가 제주에서 만났다. 어색할 줄만 알았던 평어는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던 때처럼 편하게 나왔고, 우리가 원했던 대로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시간, 동선을 고려해 멤버들은 작별인사를 했고, 아쉬움을 퐁퐁 남기고 떠났다. 나도 항만 터미널이 보여 물비늘 차에서 내려 작별인사를 하고 걸어 들어갔더니, 제주에는 부두가 여러 개였고 내가 탈 배는 6부두를 넘어 국제 터미널까지 약 3KM를 더 가야 한다고 했다(내가 내린 곳은 1부두!). 택시 부르기도 애매한 위치기고, 날도 선선해 걷기로 했다. 항구의 산업도로 옆 보도블럭으로 들어섰다. 사람은 없고, 차만 쌩쌩이는 차도 옆 보도는 의식할 것도, 주의 할 것도 없었다. 아직 뱃시간은 충분했다. 걸으면서 이생각 저생각 중, 갑자기 웃음이 피식 났다.
‘아니, 물비늘이랑 친구가 되었잖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진짜 그렇게 되었네.’ (흐흐)
몇년 전, 제주에 와서 물비늘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여행보다는 출장가는 일이 많다. 일과 함께 가기에 그 지역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진짜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미리 연락해 약속을 잡지 않는다. 용건이 있어서 떠난 짧은 여행에 내 스케줄에 맞춰 달라기 미안해서다. 그런데도, 물비늘은 연락해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못하지만 동경하는 프리다이빙과 트레일 러닝을 즐기고, 잠시봐도 세련된 감각을 지닌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물비늘은 사업하는 사람임에도 정의로움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팟캐스트를 열기도 하고, 지역농산물을 홍보해 팔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기도 하고, 그저 한 두 번 만난 데면데면한 사이이기도 했다. 어쨌든 망설임 끝 연락해서 물비늘을 만났다. 빨간 픽업트럭을 타고 온 물비늘과 우리 가족은 묵묵히 우럭튀김을 먹고, 커피한잔 하고 헤어졌다. 더 노력하면 친하게 되었을까? 아마 아닐 거다. 그 후에는 제주에 와도 별 연락 않고 지냈다. 뭐, 함께 나눌 꼭지가 없으니까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황전환. 지난 봄 물비늘이 워크보트에 승선신청을 했다. 의외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3차 출항을 함께 하면서 일상을 간간 나누기도 하고, 동료가 아니면 잘 나누기 어려운 일터 스트레스도 이야기했다. 한 번 쓰면 예전으로 돌릴 수 없다는 평어도 워크보트 안에서 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좋은 소식이나 속 터지는 일이 있을 때 일상을 더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 워크보트 오프라인 만남을 물비늘의 홈그라운드인 제주로 가게되는 바람에 물비늘의 호스트로 즐거운 경험과 추억을 많이 쌓았다. 항구에 바래다 주는 길에 물비늘(이제는 예비사회적기업 대표!)은 사회적경제도 의미없음과 재미있음을 찬양하는 b급컬쳐를 만들어 보면 재미있지 않겠냐며 아무생각이나 던졌고, 나 또한 아무 생각으로 답했다.
‘와. 친구다.’
그런데 그건 물비늘 덕분도, 내 노력도 아니었다. 나 그리고 너 만이 아닌 여럿이 우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체의 힘이 생긴다. 너의 사랑의 작대기- 관심과 애정-가 딱 나를 향해 있지 않더라도, 그 작대기가 나를 포함한 우리로 향할 때 그 작대기는 나의 것도 된다. 그렇게 우리 안에 속한 여럿은 그 작대기 하나에 힘을 받는다. 게다가, 단독으로 작대기를 받는 것 보다 사실 갚아야하는 부담도 적다. 흐흐. 내 배가 있는 항구를 향해 열심히 걷던 그 날, 내 능력과 노력으로 안되었던 일이 워크보트, 그러니까 '우리'로 가능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주고 받을 일 없던 작대기가 워크보트로 이어졌달까. 피식피식 웃음이 나고, 콧노래를 부르며 그 길을 걸었다.
함께 연대하거나 협력할 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사람은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있으나 마나 한데, 저사람은 왜 여기 껴가지고… 또는 이 사람은 같이 하자는 것 마다 태클이야. 참 비기싫은 데 어디 가지를 않네... 누군가와 같이 할려고 할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지고, 몸도 많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성가시거나 도움안되는 사람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나는 우리일 수 있고, 그 이유만으로 내가 원하고, 고심하던 그 일이 가능해진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커뮤니티든 팀이든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하거나, 매사 시도해보지도 않으면서 부정적인 사람이 자신이라면 염치와 성의를 장착해야 겠다. 하지만 지금 본인이 다른 사람 보다 무리안에서 뭔 갈 더 많이 고민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면 아까워 말자.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자신이 어떤 무리안에서 열심히 하고, 자신의 자산을 나누는 것은 결국 다 자신에게 돌아 간다.
그렇다면 함께 무엇을 꾸리는 데 내가 지불해야 할 진짜 승선료는 얼마일까?
워크보트에 승선하면서 나는 빨리 그 가격을 헤아려 지불하고 당당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그 가격은 돈이나 노동력이 아니었다. 진짜 내가 지불해야 할 승선료는 나와 타인에 대한 여유와, 다름에 대한 관대함, 거기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였구나, 헤아리게 된다. 지난 1년 반,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았는데, 나 또한 달러졌네 싶다.
매일이 끝도 없이 이어진 것 같은 날들에 다시 출항한다. 출렁거리는 바다 앞에서, 지금 나에게는 지난 날의 후회와 미련을 탈탈 털고 새로운 시작이 있다. 나에게도 선원들에게도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본다.
“Welcome on Board!(승선을 환영합니다)”
생에서 내 선택으로 다른 누군가와 한 때를 공유하는 한 배를 탄 느낌만으로도 충분하다. 고맙다, 선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