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명희 Jun 28. 2023

동료에게 최선이란?

원피스라는 만화가 있다. 해적왕이 되어 보물섬을 찾아가는 큰 꿈을 가진 루피와 루피가 모으는 동료들의 긴 여정이 시리즈에 나온다.  루피는 해적단이 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역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므로, 일의 적임자가 나타나면 "너 내 동료되라!"라고 이야기 한다. 처음 루피의 제안을 받은 캐릭터들은 콧방귀를 낀다.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이는 루피를 뭘 믿고 한 배를 타겠는가. 그러나 루피가 찜콩한 캐릭터들은 결국 루피의 동료가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마리, 나는 사람을 하나도 못키웠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자신이 찜콩해서 신경써줬던 동료가 떠날때. 주로 함께 일하는 어린 동료들이 속속 떠날 때 나이든 동료가 하는 말이다.  


일의 주기가 짧아 지면서 경계를 구분하여, 누가 누굴 봐주기에 세상은 너무 빨라졌다. 오늘의 노하우가 내일은 구식이 되는 짧은 주기에 몇 년 더 일해봤다고, 누가 누굴 키우나. 또 샤넬자켓처럼 정통, 클래식이 중요할 때가 있는가 하면, 오래된 지혜보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잘 캐치하고 디지털을 잘 다루는 것이 일에 더 이득이 되는 경우도 왕왕 많아졌다. 즉, 누가 누구에게 배움을 주고, 또 받아야 할까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상에서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의 경계는 힘을 잃는다.


그러기에 함께 일하는 동료의 경력을 따져 선배 또는 후배로 가르고,  내가 누구에게 무언가를 단방향으로 “준다(give)”라고 생각하면  상대와의 관계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선배만이 문제가 아니다. 나이가 달라서 오는 피곤함을 서로같다. “라떼는”이란 말이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에게 의미없는 훈수나, 영웅담의 피곤함을 가르키는 대명사가 되었듯이, “요즘은~”으로 시작해서 힙함을 과시하거나,  “~안해요!”부정형으로 끝나면서 솔루션은 내책임이 아니라는 듯이 경계를 긋는 사람의 이야기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를 주어로 나 보다 나이 어린(또는 경력이 적은), 혹은 나이 많은(또는 경력이 많은) 동료에게 무엇을 해준다(serve)는 생각과 마음을 버리자. 누군가의 선배 또는 후배로 무엇을 해주려 하기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동료로 상호 작용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직언할 수 있는 안전감이 있을 때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선상의 누군가가 아닌, 나와  생물학적/사회적으로 다른 맥락(나이, 성별, 경력 등)에 있기에 나와 다른 장단점과 특성, 배경, 기질을 가진 파트너, 동료를 만났음에 감사하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경험의 양이 다르더라도 서로 합의한 목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일한다면, 나 혼자만은 절대 내지 못하는 탁월함을 우리의 일에 불어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도 없고, 항해라고는 1도 모르는 원피스의 해적 루피가 세계최고의 칼잡이 조로와 동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루피가 조로를 불렀기(call) 때문이 아니라, 루피와 함께 하는 과정에서 조로가 루피의 동료가 되어야 겠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나를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함께 일해보면 안다. 나나나나나 하는 사람인지, 나를 지키면서 함께 일하는 상대에게 주파수를 맞추려는 사람인지. 동료는 상호작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허들링 프로젝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