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은 풍경보다 누군가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당신은, 내게 여름이었다.
우리는 봄에 만나 가을에 헤어졌다. 그러므로 여름은 온전히 사랑으로 충만한 계절이었다. 서툰 마음을 확인하고자 밤새 전전긍긍하지도, 끝난 마음을 이어나가고자 밤새 전전긍긍하지도 않는.
그 계절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 특유의 반짝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이해해 채워 넣기도 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운명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기도 했다. 딱 여름만큼. 딱, 그 계절의 빛나는 생명력처럼.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자취방 침대에 누워 서로의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하다 당신은 내게 ‘이대로도 좋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이대로도 좋은 날’을 살아본 사람이 되었다. 사랑은 끝났지만, ‘이대로도 좋은 날’은 돌림노래처럼 여름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 어쩌면 과거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