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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 Dec 21. 2020

<윤희에게> 당신에게 쓰고,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헤어진 뒤에도 당신에게 전할 글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어떤 마음들은 관계가 끝이 나도 계속되기도 하니까. 꾹꾹 눌러 담아도 기어코 비집고 새어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 말들은 당신을 향했지만 닿을 수 없기에 온전히 나를 위한 글들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을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웠다.


영화 <윤희에게>는 편지로 시작해 편지로 끝나는 영화다. 그리고 그 편지를 통해 길고 긴 세월,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했던 윤희와 준의 관계는 다시금 시작된다. 그리움이라는 연료를 잔뜩 머금은 채. 영화는 그들의 삶에 새로운 마침표를 찍는 대신 작은 쉼표를 선사한다. 윤희와 준의 삶은 편지를 주고받기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포기하고 숨는 대신 용기를 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끔 너의 꿈을 꾼다’라는 말은 ‘나도 네 꿈을 꿔’라는 대답으로 완성된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가끔 당신을 생각을 한다. 이런 나의 생각은 당신에게 닿을 수 없고, 나는 당신의 대답을 들을 수 없다. 그럼으로 이것은 결국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살다 보니 그렇게 가만히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순간들이 필요한 법이다.




잘 지내니?

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

네 소식이 궁금했어.


너와 만났던 시절에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할 거야.


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돼 버렸네?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아.

그땐 모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

나도 너처럼 도망쳤던 거야.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편지에 너희 집 주소가 쓰여있긴 하지만,

너한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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