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품은 바다로

최고의 맛!-굴구이

by 이경희


이른 아침 충남 보령으로 향했다. 그제 잠시 머물다 떠나야 했던 부산 바다에 대한 아쉬움을 J에게 이야기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시간을 보니 참 머나먼 곳이다. 겨울여행을 평일 중에 조용히 만끽할 수 있게

되어 느긋한 마음으로 처음 가보는 길들을 지났다.



천북 장은리 굴단지 도착하니 굴로 시작해서 굴로 끝나는 굴 식당들이 즐비했다 -굴! 굴! 굴! 망태기와 대야에 푸짐하게 쌓인 석화! 여기저기서 정감 어린 충청도 말투로 자기네 식당에 오면 푸짐하게 주겠다는 젊은 주인들의 호객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는 호객을 하기엔 목 힘이 부쳐 보이는 얼굴에 주름 가득한 할머니들이 굴을 까고 있다. 막상 잘 아는 단골 식당이라도 있듯이 안으로 향했지만 겨울의 찬기운에 평일의 썰렁한 분위기까지 겹쳐 어느 곳으로 들어가 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머뭇대는 나 대신 J는 결단력을

발휘하여 손님 없는 식당을 골라 갯벌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장화 신은 할머니가 마술사 마냥 긴 포치로 능숙하게 불을 켠다.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석화 한 망태기를 풀어 대야에 주르르 쏟더니 한 움큼을 쥐고 불 위에 좌~악 펼쳐놓았다. 곧바로 우리바빠지기 시작했다.


펑펑 튀면서 뜨거운 바닷물까지 울컥울컥 토해내는 익어가는 석화를 보노라니 정신이 없었다. 아이고 굴 찜을 해달랄 걸 괜히 이 소란을 자처했나 싶었지만 이미 굴은 껍질을 열고 뽀얗고 오동통한 살들을 내보였다.



앞치마를 두른 채 긴 집개와 코팅된 장갑, 버터나이프를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하며 불판 위의 굴을 잘 익도록 뒤집고 껍질을 벌린 굴은 골라서 버터나이프로 마저 열어 패주를 껍질과 분리한 후 재빨리 후루룩 먹는 일은 예사롭지 않았다. 사이사이 뜨겁고 짭조름한 국물까지 마시며, 차디찬 사이다 마시기를 반복했고, 거기다 사이사이 창 밖 갯벌 풍광까지 구경하며 다시 뜨거운 굴을 꿀떡 삼키자니 정신이 빙빙 돌렸다. 이건 정신없는 먹기 전쟁이었다.

한판의 무더기 굴 껍데기가 고무통으로 던져진 뒤부터는 여유롭게 하나하나를 살펴가며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뷔페에 가면 맨 먼저 시작해서 끝까지 먹는 것이 굴이다. 레몬만 뿌려 먹어도 좋고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간장도 어울린다. 치즈 등을 올려 오븐에 구워도 맛있지만 굴밥을 양념간장에 비벼먹으면 기막힌 맛이다.


캘리포니아 레돈도 비치에 파는 굴에서는 자주 진주가 나왔다. 운이 좋으면 흑진주 큰 것이 걸리기도 한다지만 내 경험으론 보관 중 어딘가에서 꼭 잃어버리게 되는 작은 상아색 진주가 나왔던 기억만 있다. 이곳 천북에서는 진주를 굴 속에서 자라게 하지는 않으니 굴이 굴답게 자랄 수 있어 다행이다. 갯벌이 펼쳐진 바다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간 생각되었던 나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물었고 J는 마음을 다해 답했다. 나의 우문에 대한 그의 현답으로 마음이 가벼워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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