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총합보다 마음의 화합이 더 크네
건호에게! 2020/08/21
내일 새벽 공항으로 출발하겠구나? 오전 8시 비행기 편이랬지? 혼자서 먼저 가는 거라 마음 써야 할게 더 많았겠다. 혹시 빠트린 것 있으면 지언이 편으로 보낼 테니 알려줘.
긴박했던 미국에서의 지난 5월, 뉴욕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 기다리며 짐 옮기느라 장갑이 몇 번이나 찢어졌었다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마스크를 쓴 채 서로에게 의지하며 동행하던 사진 속 모습 감동이었어.
2 주간의 격리 역시 만만치 않았겠지만 잘해줬고. 5 월부터 8 월까지 함께 한 시간 생각보다 편안했고, 즐거웠고, 소중했어. 내 생애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서 삼시세끼 식사를 준비해 본건 처음이었네. 본의 아니게 온갖 한국 음식과 더불어 아프리카식, 스페인식, 중식과 일식까지 세계의 음식들을 만들어보았어.
'사람의 앞 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2020 올해는 내일 일을 조금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모두에게 일어나서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이다. 그렇지? 결혼 후 친가에서 절반, 처가인 우리 집에서 절반의 시간을 지내며 당황스러움도 컸을 거야. 아주 다른 식문화와 가족들의 분위기가 특히.
안쓰러웠던 부분은,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 홀로, 오랫동안, 딱딱한 식탁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으로 회의하고, 메모하고, 집중하여 일하던 모습이었어-자정부터 새벽 까지.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면 시차의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일 할 수 있게 된 부분은 안심이야.
여러 일들 와중에도 이미 지나간 나의 생일을 소환하여
스테이크를 요리해 주었던 것-맛 때문에 잊지 못할 거야. 햄버거와 빠에야도 그렇지만 달걀노른자로만 만든 까르보나라의 고소하고 찰진 맛은 특별했어. 장인 생신 날 준비한 등갈비 오븐구이는 낯선 주방에서 정성과 오래 시간을 들인 메뉴여서 더 감탄했어. 더불어 식사 후 매번 설거지까지, 고마웠어.
"밝디 밝은 사람이어서 좋아."라며 사위에 대한 장인의 속내를 들은 적 있는데, 이번에 함께 지내면서 나 역시 느꼈었네. 건호네 부부의 결혼 생활도 그러리라 믿어.
열흘 후면 지언이도 갈 거고, 두 사람에게 9월 새 학년이 펼쳐지네. 한동안 어디서나 행동의 자유가 제약될 테지만 두 사람만의 멋진 해결책으로 이 시기를 무사히 잘 통과할 거라 믿어.
희망찬 염원으로 보낸다.
건강하게 지내다 반갑게 다시 만나기로 해. 잘 지내.
지언's mom(장모가^^)
긴 장마가 끝나고 나니 산촌의 정원과 텃밭은
온통 내 키만 만큼 자란 풀 숲이 되었다. 날마다 정원관리에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지내다, 밤 늦게서야 엽서 두 장을 꺼내 사위에게 작별의 글을 썼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