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주 차: 가장 낮은 곳을 향하는 왕의 길 (마 20:17-34)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이제 점점 더 비장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일을 세 번째로, 그리고 가장 구체적으로 예고하십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 20:18-19).
이 예고에는 조롱, 채찍질, 십자가 처형이라는 끔찍한 수난의 과정과, 제 삼일의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결과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분명히 알고 계셨으며, 그 길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장한 십자가 예고 직후, 너무나도 대조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 즉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와 예수님께 절하며 무언가를 구합니다. 그 요구는 이것이었습니다.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1).
예수님은 방금 죽음과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영광과 권력의 자리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실 잔(고난)과 그가 받을 세례(죽음)를 그들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리 배정은 오직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일로 다른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분노합니다. 이는 그들 역시 똑같은 야망을 품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어리석은 제자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이 세상의 리더십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5-27).
세상의 위대함은 ‘섬김을 받는 것’(ruling over)입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힘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섬기는 것’(serving)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위대한 원리를 단지 가르치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신의 삶과 죽음 전체를 통해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심장과도 같은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왕이신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죄의 값으로 치러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대속물(ransom)’이 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¹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요,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이 위대한 가르침 직후, 마태는 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떠나실 때, 길 가에 앉아 있던 두 맹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외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마 20:30). 무리가 꾸짖어도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 지릅니다.
이 장면은 놀라운 대조를 보여줍니다. 바로 직전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열두 제자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예수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권력 다툼을 하고 있었지만, 육신의 눈이 먼 이 두 맹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를 정확히 알아보고 그분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고, 그들은 즉시 보게 되어 예수를 따랐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영의 눈은 떠 있었던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왕의 길을 본 자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길, 즉 십자가의 길, 섬김의 길, 대속물이 되는 길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바로 그의 제자들이 따라야 할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맹인이 되어 세상의 권력과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비록 세상에서는 맹인처럼 보일지라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고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그 섬김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까? 이번 한 주,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신 왕의 길을 따라 묵묵히 섬김의 십자가를 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각주:
¹ N. T.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5). 라이트는 예수님의 ‘대속물(ransom)’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제의적 희생을 넘어, 이스라엘의 오랜 포로 상태를 끝내고 진정한 해방을 가져오는 출애굽과 같은 구원 행위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p. 589 인용 및 재구성)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 비장하게 말씀하시는 순간에도 여전히 ‘높은 자리’를 구했던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습니까?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는 말씀은 나의 가정, 직장, 교회 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은 떠 있었던 두 맹인과, 육신의 눈은 떴지만 영의 눈은 멀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 돌아봅시다.
이름 없는 섬김 실천하기: 이번 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나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예: 공동체 공간 청소, 다른 사람의 일을 말없이 돕기 등)
대속의 은혜 묵상하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다는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을 이번 주 매일 한 번 이상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긍휼을 구하는 기도: 두 맹인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던 것처럼, 나의 지혜나 능력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매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