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주 차: 천국과 재물, 은혜의 경제학 (마 19:16-20:16)
오늘 말씀은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젊음, 부, 높은 지위, 그리고 종교적 열심까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6). 그는 자신의 ‘선한 일’, 즉 공로를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수준에 맞춰 계명들을 언급하셨고, 청년은 자신 있게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0)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율법의 조문들은 다 지켰을지 모르지만, 그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그에게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 19:21).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재산을 다 팔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 청년에게는 ‘재물’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었기에, 그것을 내려놓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결국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2). 그는 영생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 19:23-24).¹ 재물이 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그토록 어렵게 만들까요? 재물은 우리에게 거짓된 안정감을 주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5)라고 묻자, 예수님은 구원의 본질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 19:26).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선포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무엇을 얻겠느냐”며 보상을 질문합니다 (마 19:27). 예수님은 제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면서도, 그들의 공로주의적인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품꾼들을 들여보냅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품삯을 계산할 때, 가장 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부터 시작하여 아침 일찍부터 와서 온종일 수고한 사람까지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그러자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합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2).
그들의 불평은 인간적인 ‘공정성’의 관점에서는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대답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가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 나중 된 자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 20:13-15). 하나님 나라는 ‘내가 일한 만큼 받는다’는 공로의 원리가 아니라,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주인의 선하심’, 즉 은혜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시간만 일하고 하루 품삯을 받은 마지막 품꾼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먼저 믿었다고 해서,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나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가르침을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십니다. 부자 청년은 세상에서는 먼저 된 자였지만, 재물 때문에 나중 된 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기에 먼저 된 자가 될 것이지만, 만약 그 사실을 자기 공로로 여기는 순간 나중 된 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나의 재물과 의로움을 의지하는 먼저 된 자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이 주인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나중 된 자입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참된 ‘나중 된 자’의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각주:
¹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예루살렘의 작은 문인 ‘바늘귀 문’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으나, 문자 그대로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당시의 과장법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핵심은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다.
부자 청년에게 영생의 걸림돌이 되었던 ‘재물’처럼, 오늘 나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우상은 무엇입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까? 내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포기하고 있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나는 아침 일찍부터 일하고 불평했던 품꾼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마지막에 와서 은혜로 품삯을 받은 품꾼에 가깝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어떤 마음이 듭니까?
우상 내려놓기: 이번 주, 내가 재물이나 성공, 인간관계 등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영역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그것들을 나의 주인이 아닌 청지기로서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 내가 노력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일이나,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해 질투하는 마음이 들 때, “주님, 모든 것이 주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에 달려있음을 인정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은혜에 감사하기: 내가 구원받은 것이 나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이번 주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일상 속 작은 은혜들을 구체적으로 5가지 이상 기록하고 감사 기도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