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탐구: 52주 완성 27

27주 차: 하나님 나라의 관계 윤리 (마 19:1-15)

by 박루이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마태복음의 세 번째 큰 단락으로 들어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이 여정 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관계인 ‘결혼’과, 하나님 나라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대상인 ‘어린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깨어진 관계 속에서 신음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관계들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창조의 질서로 돌아가라: 결혼

예수님의 여정길에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그를 시험합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9:3). 이는 당시 ‘어떤 이유로든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던 힐렐 학파와, ‘음행한 경우 외에는 안 된다’고 가르쳤던 샴마이 학파 사이의 오래된 논쟁에 예수님을 끌어들이려는 교묘한 함정이었습니다.¹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논쟁의 틀에 갇히지 않으시고, 문제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십니다. 그분은 모세의 율법이 아닌, 태초의 창조 질서를 상기시키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 19:4-6).


예수님께 결혼은 단순히 인간적인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짝지어 ‘한 몸’으로 만드신 신적인 결합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혼의 ‘조건’에 집중했다면, 예수님은 결혼의 ‘본질’에 집중하셨습니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허락한 것은 인간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마 19:8) 주어진 차선책일 뿐, 본래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계 윤리는 인간의 편의나 죄된 본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 어린아이를 용납하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

결혼에 대한 무거운 가르침 이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따뜻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으며 막아섭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이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는데, 아이들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중요한 사람’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마 19:14).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천국이 바로 이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무력함을 알고,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선물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받는 자세입니다. 천국은 나의 공로나 자격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왕의 나라는 세상이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이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4. 결론: 왕의 마음으로 관계 맺기

오늘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들을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비추어 주셨습니다. 결혼 관계에서는 인간적인 계산과 이기심을 넘어 창조의 신비와 거룩함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세상의 기준을 넘어, 가장 연약하고 작은 자를 주님 자신처럼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가르침은 결국 하나의 원리, 즉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나의 시선이 아닌 왕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라는 것으로 모아집니다. 이번 한 주,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이 왕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각주:

¹ 당시 유대 사회에는 이혼의 조건에 대해 큰 논쟁이 있었다.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는 신명기 24:1의 ‘수치되는 일’을 아내의 ‘음행’으로만 한정 해석했지만, 진보적인 힐렐 학파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음식을 태우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까지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폭넓게 해석했다. 바리새인들은 이 논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다.


1.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나는 결혼(혹은 이성 관계)을 나의 만족과 편의를 위한 계약 관계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거룩한 ‘한 몸’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나의 모습 속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과 의존성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혹은 제자들처럼 효율과 중요도를 따지며 사람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주변에서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무시하거나 꾸짖었던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는 누구인지 돌아봅시다.

2. 적용할 내용

배우자(혹은 소중한 사람) 축복하기: 이번 주, 배우자나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비판이나 요구 대신,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임을 고백하고 구체적으로 칭찬하며 축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어린아이’ 섬기기: 공동체 안에서 가장 연약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지체(아이들, 초신자, 노약자 등)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묻고 작은 도움을 실천하겠습니다.
겸손의 기도드리기: 매일 기도를 시작할 때, 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 저는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무지합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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