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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우라 고리유 Jan 07. 2018

제47화, "뻔한 사랑은 남 탓이 아니다."

지금과는 달리 B씨의 첫 고백은 참으로 어려웠다.


지금과는 달리 B씨의 첫 고백은 참으로 어려웠다. 심장이 떨렸고, 어떻게 상대방에게 고백해야할지 망설였었다.


단지 '우리 사귀자'가 전부인데, 그게 참 어려웠다. 혹시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얘가 나를 싫어하나? 나는 물고기인가? 내가 별로 매력이 없나? 정도가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원인이었다.


첫 고백과는 달리, 현재 B씨의 마음은 공허하다. 좋아하는 이성을 발견해도 공허하다. 소개팅을 나가도 공허하다. 가끔씩은 외롭다는 생각조차 했던 B씨다.


비슷한 루틴에 비슷한 기승전결 그리고 비슷한 반응에 따른 비슷한 고백이 x10번 정도 반복되다보니 어떠한 대상을 만나도 사랑스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얼만큼 매력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매월 잡지를 열심히 구독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B씨는 이성의 마음을 분간할 정도의 감각은 기를 수 있었다. 또한 수차례 경험 끝에 비오는 날에 따른 데이트 코스 혹은 여름 날에 가야할 장소 혹은 연말에 놓쳐선 안될 파티 정도는 코딱지 팅기듯 쉬웠다. 


이성을 다가가는 법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포기를 빨리 하거나 상대방의 어색함을 계속 관찰하는 것 만으로도 괜찮았다. 첫 만남이 어색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어색함은 필수다. 그리고 어느정도 대화를 하면 풀리게 돼 있다. 설사, 재미없는 대화를 하게 된다하더라도 어색함을 풀린다. 굳이 남자라고 먼저 대화를 리드할 필요도 없다. 또한 여자라고 리액션에만 몰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비슷하게 사는 이야기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회사에서의 일. 상사의 꼬장. 주변 사람들의 결혼식. 주선자 칭찬하기 등 둘 사이에 존재하는 수 많은 대화주제는 항시 넘쳐났다. 


B씨는 여기에 한발 더 진화됐다. 모든 것에는 패턴이 있었고, 거기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B씨는 3번째 여자와 만났던 카페에서 9번째 여자와 만났고, 5번째 여자와 갔던 와인바에서 12번째 여자를 데려갔고, 1번째 여자와 함께한 모텔에서 15번째 여자를 데려갔다. 생물체의 얼굴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가 기억하는 이성에 대한 접근법은 알고리듬처럼 수식화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감정선이 도출되는지는 이제 껌 씹기가 됐다. 어떤 상대든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실패도 몇 있었지만 얼추 성공 사례가 더 많았다. B씨가 기술자가 된 것이다.


이에 B씨의 고민은 남달랐다. 어떻게 해야 설레일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야 그럴까? 동호회를 가야하나. 클럽을 가야하나. 외국을 가야하나 등 다양한 만남의 장소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전혀 보지 못했던 공간에서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은 B씨에게 짜릿함을 선사할 것이었다.


하지만 B씨는 게을렀다. 지금처럼 편안한 루틴이 좋았다. 오히려 점점 더 집요해지는 관찰력이 그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게으름 덕분에 그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완벽하게 이해한 공간에서 새로운 대상을 구경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적은 식나이지만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은 더 나아가 무슨 감정을 갖고 있는지 정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외에 여러명의 상대들이 보인 제각각의 표정과 이야기들은 그에게 충분한 데이터가 됐다.


결국 B씨는 뻔한 사랑에 지쳐 흥미를 잃어버렸다. 대신 인간탐구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퍼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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