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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우라 고리유 Feb 06. 2020

2003(1)_"2시간 후에 죽습니다."

괜찮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괜찮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믿고 싶어지는 건 취향이 없어서일 것이다.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스팸전화가 계속 온다. 자꾸 내가 죽는다고. 하도 어이가 없어 이제는 말싸움까지 한다. 그놈의 070들과 말이다. 이제는 조금 약이 올라서 욕까지 한다. 


“야 씹쌔끼야, 왜 자꾸 나한테 죽는다고 말하냐? 그리고 왜 항상 2시간 후인데?” 


070은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070과 나는 항상 대치한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 끝나고 퇴근길에 나서는데, 또 다시 전화가 왔다.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응 그래 070. 꺼져.” 


피곤함에 070이 귀찮아졌다. 예전엔 이 전화가 죽도록 싫었는데, 이제는 일상이 돼 버렸다. 내 인생이 대범하지 않았던 탓인지 이런 드라마틱한 상황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입춘을 넘기자 갑자기 떨어진 날씨는 살을 찢어버리는 것같이 매서웠다. 내가 선 1호선 남영역은 더군다나 야외여서 칼바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어서 직업을 옮겨야지 하지만 결과적으론 항상 쳇바퀴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회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사는 주인공이니까. 


“야이 씨발놈아. 이럴거면 대학을 왜 나왔냐?”

“죄송합니다. 부장님. 다시 편집해서 올리겠습니다.” 


070은 항상 내가 힘들때마다 전화를 걸어준다. 오늘은 심지어 2번이나 전화를 줬다. 아까 부장한테 맞춤법 틀렸다고 욕 먹을때도 기똥차게 타이밍을 찾아 내게 전화를 줬다.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야이 씨발새끼야, 내가 너 때문에 진짜 죽고 싶다. 넌 왜 항상 힘들 때 전화질이냐?”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 존나 적절하긴 하다. 내가 죽고 싶긴 했었어. 그럼 어떻게 죽는데?” 


070은 항상 같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다. 누가 내게 이런 장난전화를 하는진 모르겠지만 항상 나는 070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혹시 모르지않나 이게 사람이 내는 목소리 일지.



 그러고보니 070이 내게 전화를 건 날이 내 생일이 끝나가는 자정이었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짤이나 보던 사이에 갑자기 070으로 전화가 왔다.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네?”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네?”

“뚜뚜뚜” 


희한했던 것은 마지막 통화종료음이 육성같았다는 것이다. 2비트 컴퓨터 사운드가 아니라 인간의 성대로 내는 것처럼 흔들림이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물론 나도 의심은 해봤다. ‘왜 이런 장난전화가 내게 왔을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찾을 여유도 없다. 070은 안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니까. 


그런데 다음날에도 또 같은 전화가 온 것이다. 난 생일날 첫 전화를 받고서 너무 수상해 해당 070 번호를 ‘미친놈’으로 정했다. 다음에 또 전화가 오면 당황하지 않고 쌍욕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먼저 피해자였으니 이젠 상대가 피해자가 될 차례였다. 


“네, 여보세요.”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야이 씨발 새끼야 뒤질레? 개좆만한 새끼가 어디서 장난질이야. 그리고 통화음 흉내낼거면 제대로 해봐 이 병신 같은 새끼야. 호로새끼 배때지를 터트려버릴까.” 


모처럼 만에 욕을 하니 시원함을 느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나선 욕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뭐? 이 씨발 개 좆만한 새끼가 자꾸 똑 같은 말만 싸지르네. 씹싸바리 새끼가 부랄을 뜯어버릴라.”

“뚜뚜뚜” 


 황당하기 그지없다. 왜 070은 항상 같은 말만 하려는 걸까? 그리고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쉬지 않는 것일까? 혹시 내 주변인인가? 그럼 왜 내게 당당히 말하지 못하지? 그리고 난 왜 죽어야 하는거지? 2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이 씨발새끼 경찰에 신고해버릴까? 근데 딱히 내가 죽을 일도 없는데? 아 귀찮아.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좆 같은 새끼 내일 또 전화오면 죽여버려야지 씨발놈 잘됐다. 어차피 심심했는데. 개 좆만한 새끼 한명 생겼네. 하하하!” 

이러고 잠을 잤었다. 


큰 재미가 없는 내게 주말은 좋은 시간이 아니다. 쉬는 날이지만 나는 집에만 있어야 했다. 추운 겨울에 집에 나가서 할 일 딱히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돈이 없어서 즐기지도 못한다. 예전에 용기를 내서 밥을 먹으러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가격에 맞는 음식은 순대국 빼곤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내가 미천하나, 좀비처럼 쓰러져가는 패잔병들과 함께 섞일 순 없었다. 적어도 나는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왔고, 돈을 많이 못 벌지만 4대 보험이 적용되는 화이트 컬러 문예지 에디터니까 말이다. 


나는 힘이 없어도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미천한 하류계급만 먹는다는 순대국을 먹을 순 없어. 저들을 봐라. 얼마나 외로워 보이는가. 신발에 흙먼지가 많고, 토시를 낀 걸로 봐서 아마 노가다일이 끝나고 온 것이 분명할거야. 근데 대머리니까 아마 노총각이겠지 아니다 자세히 보니까 노인이구나. 어깨도 굽은 것이 분명히 노가다로 인생 말아먹은 작자가 분명할꺼야. 빌어먹을 순대국같으니라고. 씨발 얘네들과 내가 같은 선상에 있을 순 없어. 라면을 먹자. 


그리곤 나는 불닭복음면과 천하장사와 참치김밥을 샀다. 순대국값과 같은 6000원어치로.  






삶이 우디앨런 영화처럼 매일 아름다웠으면 했다. 비극적이어도 혹은 영화 속 빛과 바람 그리고 시공간에 맞추어 따스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2부에 계속>




위 내용의 저작권은 저자  '동지호' 에게 있습니다. 해당 내용을 불법 배포하지 마시고, 원작자에게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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