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11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서 신촌 현대백화점 앞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초가을 선선한 바람과 따끈한 햇살을 받으며 정류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버스들이 속속 도착하자 사람들은 차례대로 줄을 지어 승차했고, 때마침 초록불로 바뀐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이제 막 하차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한 버스에서 내린 할아버지와 어린 손녀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초등학생쯤 되었을까 싶은 어린 손녀는 저만치에 있는 신호등이 초록불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끌며 뛰다시피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따라 뛰는 듯하면서도 영 속도를 내지는 못하더니 결국 "위험해. 다음번에 건너. 다음번에"하며 속도를 늦췄다. 다른 사람들은 다 건넜는데 자기만 못 건넌 게 아쉬운지 손녀딸은 인상을 찌푸리며 "에잇"하며 발을 구른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손을 잡고 있는 건 어린 손녀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기대고 있는 느낌이다. 번잡스러운 신촌 오거리 한복판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쳤을 때 울고 싶은 건 손녀뿐만이 아닐 것 같아 보였다. 믿음직스럽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손녀딸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그 손에 마음을 의지하며 걷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 이경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젊고 잘 나가는 시절에는 아이디어가 샘솟았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지가 않아서 후배들이 빨래 짜듯이 선배의 아이디어를 쥐어짤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혼자 할 수 없으니 후배들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매우 공감한다.
혼자서도 잘 하던 시절이 있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기특할 만큼 반짝이던 아이디어가 화수분처럼 샘솟던 시절. 그때 내가 특별히 더 노력했거나 애를 쓴 기억은 없다. 그저 "젊은 감각"이 큰 기둥이 되었고, 자신감이 뒷받침이 되었다. 그런데 감각이나 촉이 예전 같지 않은 순간이 온다. 촌스러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경험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둥글어진 것이다. 반드시 내 의견을 성사시키려고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내가 이 정도 잘 났으면 저 사람도 어느 정도 잘났음을 인정해주게 되면서부터 치열함이 감소한다. 이것은 분명 좋은 변화다. 하지만 후배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선배도 늙었나 봐"
늙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니, 늙어서 그런 게 맞다. 너희들도 이 나이가 돼보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마흔이 넘은 선배가 회의 때마다 자기 고집을 피우고,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뜬구름 잡는 아이디어를 마구 던질 수는 없다. 그건 후배들이 몫이라 생각해서 선배들이 양보해주는 것이다. 후배들의 자잘한 실수를 바로잡아주었던 게 바로 선배들이라는 걸 벌써 잊지는 말아야지! 언제부턴가 점점 더 뒤로 물러나려고 하는 선배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말고, 마지막까지 의욕을 낼 수 있도록 후배들이 자극을 주길 바란다. 할아버지가 손녀딸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해야 한다. 다음번에 길을 건너도 괜찮다고 말하던 할아버지처럼,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는 건 선배들이 할 테니, 후배들은 우리의 손을 잡아끌며 달리시게.
손을 잡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간단하지만 그 힘은 매우 강하다.
손을 잡고 있다고 다 해결되지 않지만
손을 잡고 있으면 그만큼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