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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ewha May 04. 2022

옛날이야기를 들려줄게

믿을 수 없겠지만 모두 사실이란다


어렸을 때 우리는 바다에서 헤엄칠  있었단다.

바다가 뭐냐면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작은 컵에 담긴 물 있지? 

그게 정말 정말 많아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도 있는 곳이야. 

그런데 정말 짜. 너무너무 짜서 마실 수는 없어.

물속에 들어가면 물고기며 문어며 미역이며 온갖 신기하고 아름다운 생물들이 살고 있지.

바다가 얼마나 크냐면 수백 명이 탈 수 있는 배를 띄워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여행도 할 수 있는 곳이야.

여행이 뭐냐고?

우리 강아지, 지난번에 꿈꾸고 나서 할머니한테 이야기해준 거 있지?  

날아다니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진장 신났다고 했잖아. 

그런 것들을 전부 다 직접 할 수 있는 거지.


바다는 보석처럼 푸르고 아름다웠어.

형형 색색 수영복을 입은 젤리 같은 사람들이 하얀 모래와 푸른 물결 속에 점점이 박혀 모여있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단다. 




맑은 날이 어떤 거냐면 모든 색들이 찬란하게 제 빛을 내는 거란다. 

햇빛이 데일 듯 뜨거운 게 아니라 따뜻하고 온화하게 반짝이는 것이란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밖이라는 게 있었지.

들판이라는 게 있었지.

숨을 크게 들이쉬면 풀냄새도 맡을 수 있었어.


비를 맞고 춤을 춘 적도 있었지.

비가 뭐냐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물이란다.


자전거라는 재밌는 이동 장치도 있었는데 직접 다리를 휘저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재밌는 기구야.

바구니를 싣고 봄 나들이 가면 바람이 살랑살랑 기분이 최고였지.


세상은 온통 파랗게 노랗게 초록으로 빨강으로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변하지.

봄이면 나무에 연둣빛 새순을 틔우고, 여름이면 찬란한 태양 아래 짙고 건강한 잎들로 무성해.

바다와 마찬가지로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고 그 안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물들, 동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어.

그것을 우리는 숲이라고 불렀어.


숲 속에는 짝을 찾는 매미도 있고 노래하는 새들도 있고 풀벌레, 쇠똥구리, 벌, 개미들도 있어. 

모두 악을 쓰고 지저귀고 각자 다른 소리를 내지만 신기하게 모두가 잘 어우러진단다.

숲의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모두가 평온해지지.  

바람소리, 빗소리,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아직도 귓가에 생생해.


학교 운동장 소리, 카페에 찻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창을 열면 나는 매연냄새 자동차 경적 소리까지 

이야기를 할수록 너무나 그립구나.


아이야, 믿어지니? 

우리에게 그런 세상이 있었다는 게. 


그런데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모든 게 어느 한순간에 '펑' 하고 사라지고

이 어둡고 습하고 답답한 곳에서도

여전히 이 할미가 살아있다는 것이야.

이렇게 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야.


언젠가 저 밖으로 모두가 안전하게 한 발 내딛게 되는 날이 오거든

할미가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해주겠니?

우리가 지키지 못했던 아름다운 일상들을 반드시 되찾아서

소중하게 가꿔줄 수 있겠니?


아가, 우리 아가, 할미가 너무 미안하다.





할머니, 할머니 눈에서 비가 내려요.

바다 맛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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