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이 아득했던 꿈으로
날개 / 비상 / 꿈 / 마음속 어린아이
라이트 형제 위인전기를 읽었을 때 반은 이해가 되었지만 반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는 열망은 알 것도 같았어요. 하지만 목숨까지 걸 정도인가 하면 거기까진 동조가 되지 않았거든요.
아주 어릴 때는 뭔가를 열망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우리 집안 형편에 감히 탐해도 되는 가격대의 장난감에 떼를 쓰는 정도였죠. 더 큰 것을 열망하면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에 근심을 얹는 것이었기 때문에 참거나, ‘애초에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다’는 체념이 먼저였습니다. 그래도 뭔가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노트에 적었는데 보통은 거기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고는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림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예고 진학을 목표로 꿈을 키우며 화실에 다니던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어요. 질투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아득한 환상 같은 것이었어요. 재능도 재능이거니와 재정적 지원도 필요한 분야니 까요.
햇볕에 잘 마른빨래를 개듯 담담히 접어둔 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슬그머니 삐죽 다시 나오고 말았습니다. 같은 반 옆자리 짝꿍이 미술 전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가까이에서 전공자의 일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교과서 귀퉁이에 석고상이며 사람 얼굴이며 낙서조차 아름다웠던 그 아이의 그림은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그리는 아이가 저에게 칭찬했어요. 그 아이에겐 그저 방과 후 같이 떡볶이 먹으며 학원에 다닐 친구가 필요했던 걸 지도 모르겠어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 친구는 남의 속도 모르고 ‘정말 소질 있다. 그림을 그려봐라. 지금도 절대로 늦지 않았다.’며 접어 두었던 부러움과 체념들을 수업시간이며 쉬는 시간이며 할 것 없이 열어서 툭툭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학원비는 한 달에 15만 원이라고요.
닿을 수 없이 아득했던 꿈으로 향하는 데 드는 운임료가 어떤 구체적인 숫자로 다가오니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가 닿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살면서 유일하게 부모님께 뭔가 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것이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차마 입으로는 말씀드릴 자신이 없어 길게 편지로 썼습니다. 편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적으며 제 꿈 역시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신중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제 앞에서 편지를 읽으시고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야지 어떡하겠냐.”고 하시며 저의 꿈에 대해 조용하지만 충분히 따뜻한 지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엄마는 택시 기사를 하시며 하루 벌어 다음날 참고서 비용을 마련하곤 하셨는데 아마 이때 저의 결심에 엄마 역시도 큰 결심을 하셔야 했겠죠.
그렇게 저에게도 꿈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 관문인 나와 부모님을 설득하고 나자 차마 넘볼 수 없던 영역이 어느덧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과정을 즐기며 나아가도 되는 행복한 여정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지지는 무대에서 온전히 그리고 마음껏 날아도 좋다는 허락이었으니까요.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여전히 살림살이는 팍팍하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제가 아직도 열망하고 있다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저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이 될 거예요.
온전히 그리고 마음껏 날아볼 거예요.
라이트 형제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