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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루스 Aug 19. 2019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구요!?

심장이 유달리 컸던 한 남자 이야기

소냐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예쁘고 밝은 성격에 책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어느날 우연히 기차에서 무뚝뚝한 한 남자를 만났고 둘은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는 원래 기차 청소부였는데 군인이라 속이고 그녀를 만났다. 남자는 그녀를 만나고서 그녀의 조언에 따라 집짓기 과정을 배워 주택 회사에 취직하여 평생을 그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게 된다. 


둘의 사랑은 더 깊어져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되고 새로 지은 주택 단지에 입주해 신혼에 젖는다. 같은 주택 단지 내에 입주한 또래 부부 친구와도 사귀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그들은 곧 아이도 갖게 된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큰 불행이 찾아온다고, 스페인으로 떠난 멋진 여행에서 우연한 교통사고로 소냐는 뱃속의 아이는 물론 자신의 다리마저 잃는 불행한 처지가 되고 만다. 


남자는 늘 묵묵히 그 곁에서 그녀를 지켰다.


소냐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인 교사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결국 찾아낸다. 특수학교에서 특수아동들을 가르치는 일. 하지만 학교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이유로 소냐의 지원은 거부 당한다. 남자는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고 정부에 편지를 보내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 보지만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어느날 밤 자기 전공을 살려 스스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을 특수학교에 만드는 것으로 소냐를 돕는다. 


소냐는 그 특유의 성격과 용기로 특수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쳐 모두 멋진 인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온통 문제 투성이인 아이들을 가르쳐 이듬 해에 세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냈고 평생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아이들 가슴 속에 남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 의지하며 한 세월을 살아 냈고 어느날 소냐는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제 홀로 남겨진 소냐의 남편은 소냐가 죽은 후에도 늘 소냐 곁을 떠나지 못해 6개월째 매일 꽃을 사들고 소냐가 묻힌 곳에 간다. 그리고 다짐한다. 곧 그녀 곁에 가겠노라고.     


그 남자의 이름은 오베. 


스웨덴에 사는 59세 남자 오베(Ove)는 무뚝뚝하기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런 사람이다. 


늘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동네를 산책하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눈에 거슬리는 일들은 하나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원칙 주의자. 


그는 꽃집에서 왜 꽃다발을 2개씩 묶어 더 싸게 파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공공기관에서 왜 주차비를 받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늘 주차장 문이 잠겼는지 세 번 당겨 확인해야 적성이 풀린다.

그는 평생 사브 자동차만 몰고 BMW를 모든 사람과는 상종조차 않는다.

그는 자동차 시트 위에 늘 신문지를 깔고 손님을 태운다.

그는 고양이 한 마리라도 자신의 삶에 끼어 드는 게 귀찮고 싫다.

그는 진입이 금지된 주택 단지에 누군가 차를 몰고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전거 바퀴 하나 손수 고칠 줄 모른다고 늘 투덜댄다.


그는 지금 죽고 싶다. 빨리 죽어 먼저 간 아내 곁으로 따라가고 싶다.


하지만 늘 죽지 못한다. 못하고 만다. 죽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천장에 끈을 달아 죽을라 치면 끈이 끊어져 버리고 약을 먹을라 치면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철로에 뛰어들어 죽을라하면 철로 앞에 누군가 발작을 일으켜 먼저 쓰러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를 구하는 시민 영웅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그를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괴롭힌다. 귀찮게 만든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차를 잘못 후진시키는 바람에 그의 화단에 상처를 내고, 

임신한 이웃이 다치는 바람에 차로 병원까지 이웃의 자녀들을 실어 나를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단지 내에 방치된 자전거를 치우다가 결국 그 자전거를 고쳐주는 일이 생기고,

그의 집에서 고양이와 집 나온 소년을 함께 재워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긴다.

어쩌다 보니 이웃집 여자의 운전을 가르치게도 되고,

아이패드 같은 기계를 혐오하던 그가 이웃집 아이가 생일선물로 갖고 싶다던 아이패드를 사러 간다.


결국 그는 죽지 못한다. 일찍 죽어 먼저 간 아내를 따르려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는 그렇게 이웃과 더불어 살다가 어느 눈오는 날 아침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추억한다.


심장이 유달리 컸던 사람. 그만큼 가슴이 따뜻했던 남자.


오베와 이웃들. 영화 <오베라는 남자> 中




경상도 남자들은 말이 없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고 전해 내려온다. 오죽하면 하루에 딱 세 마디 —“밥 뭇나(먹었느냐)?”, “아(아이)는?”, “자자!” —만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 않던가. 게다가 좀 다혈질이기도 하다. 욱하는 성질이 있고 눈싸움도 곧잘 하려 든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나도 그런 무뚝뚝함의 올가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 내 삼촌들이 그랬으니 나 역시 그렇게 보고 배우면서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상도 남자도 꼼짝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여자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그녀 앞에만 서면 어쩔 줄 몰라하고 고분고분하기 이를 데 없는 순한 양이 된다. 말 없이 가족을 돌보고 주변을 챙긴다. 안하는 척 하면서도 결국은 하고 마저못해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책 ⟪오베라는 남자⟫를 덮으면서 나는 새삼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남자의 인생은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라는 남자, 커서는 아내라는 여자에 의해서. 


오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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