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푸르게 물든 밤

by 에스텔라





학창 시절, 나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황금기에서 과도기로 접어들던 시기에 청취자로 지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았기에 그 변화의 흐름을 체감하긴 어려웠지만 라디오를 들으며 숙제를 하고 문제집을 풀던 밤들 속에서 내 사춘기의 어둠은 언제나 푸른 사운드로 물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라디오 작가’라는 꿈이 내 마음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손에 힘을 주고 ‘꼭 이뤄야지’ 다짐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의 그래프가 마음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는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을 앞둔 시기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던 시기가 찾아왔다. 휴대폰으로 DMB 방송을 보고, ‘보이는 라디오’가 익숙해지던 시절이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나는 졸업 논문 발표를 마친 뒤 잠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 방 책장에서 우연히 고3 때 쓴 일기장을 발견했다.


‘내가 쓴 오프닝 멘트를 이소라 언니가 읽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미나 작가처럼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을 건네는 글을 쓰고 싶다.’


나는 그 일기장을 가방에 챙겨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논문은 무사히 통과되었고 논문 책자를 책장에 꽂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일단 학창 시절 내가 꿈꾸던 일부터 해볼래.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안 되면… 그때 돌아오면 되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시기, 나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라디오 작가라는 길에 발을 내디뎠다.






Sally Swatland_ Looking Towards Catalina (출처: www.rehs.com)






수없이 많은 이력서와 기획안을 넣고 나서야 나는 겨우 라디오 작가 문하생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 후로 시사와 문학 프로그램을 오가며 서서히 라디오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힘들면서도 설레었고, 두려웠지만 내 몫을 해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이소라에게 오프닝 멘트를 건네거나 이미나 작가처럼 심야방송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라디오라는 따뜻한 매체 속에서 하루하루 원고를 쓰는 일이 참 좋았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돌아보면 그게 참 이상했다. 아마도 라디오 작가라는 길은 고3 시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건넨 약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기장에 써두었던 그 문장이 정말로 나를 라디오 스튜디오 안으로 데려다주었으니 말이다. 그 안에서 DJ에게 원고를 건네고 출연자를 섭외하면서 스튜디오 문을 여닫았을 때의 설렘.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스튜디오 유리 너머로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고3 소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잘하고 있지? 네가 바라던 게 이런 거였지? 이런 일을 하고 싶었던 거지?'


만약 일기장에 그 문장을 쓰지 않았더라면 결코 용기 내지 못했을 꿈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디선가 ‘라디오 작가’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련하다. 누군가의 소원이 아닌, 내가 나에게 '너의 꿈을 이뤄줄게'하며 온 힘을 쏟아부었기에 그 시절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반짝이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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