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현장 체험 학습을 떠나는 날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는 거실을 잰걸음으로 오가며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나 진짜 재미있게 놀다 올 거야. 그리고 친구랑 도시락 나눠 먹기로 했어. 맛있게 해 줘, 알았지?"
손으로 주먹밥을 동그랗게 빚던 나는 웃음을 지었다. 아이에게도 첫 소풍의 기억이 새겨질 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했다. 그날 아침의 주방에는 잔잔한 웃음이 머물렀다. 아이는 내가 만든 도시락을 들고 씩씩하게 등교했다. 지금은 '소풍' 대신 '현장 체험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쓰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단어가 주는 따뜻한 정서가 살아있다. 나는 오늘 아이의 하루가 '바람을 따라 한가롭게 거닐다'란 뜻을 품은 소풍처럼 햇살과 바람 속에서 오래도록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소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그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새처럼 조잘댔다. 나는 주방에서 아이 입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말을 음악처럼 들으며 간식을 준비했다.
"엄마, 나 오늘 버스에서 선생님이랑 같이 앉았어. 그런데 선생님이 나한테 '엄마는 뭐 하시니?'라고 물어보시는 거야. 그래서 '집에 계세요.'라고 했지. 그러니까 '엄마는 왜 일을 안 하시니?'라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게?"
"글쎄, 궁금하네. 뭐라고 했을까?"
"엄마는 저를 키우는 게 너무 행복하시대요,라고 했지."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 웃음에 나도 따라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찌르르하게 떨리고 있었다. 순간 영화 <친구>에 나왔던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질문은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 엄마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던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속에 여전히 고정된 시선이 담겨 있는 건 아닌지, 아이의 교실에서도 ‘일’이라는 개념이 경제활동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엄마는 왜 일을 안 하시니?'라는 질문은 마치 "느그 어무이 뭐하시노?"처럼 들렸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1학년 아이에게는 지나치게 판단이 담긴 질문이었다. 나는 무급 가사노동 역시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바라며 말했다.
“그래, 엄마는 너를 키우는 일이 정말 행복해. 그리고 엄마는 집에서 너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어. 그건 밖에서 하는 일이랑 똑같이 중요한 일이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있고 모든 직업은 소중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단다."
가족이 모두 잠든 늦은 밤, 나는 책상에 앉아 오래된 일기장을 꺼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몇 줄 적어 내려가려 했지만, 펜 끝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첫 문장을 써 내려갔다.
‘나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나만의 삶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꿈을 향해 달려가던 뜨거운 계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여름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진다. 햇볕 아래로 모든 것이 달아오르던 날들, 더위에 지쳐 땀이 뻘뻘 흘러내렸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여름의 벅찬 기대에 들떠 매일 밤 잠자리에 들곤 했다. 새벽까지 원고를 쓰던 손끝의 진동, 라디오 스튜디오의 문을 열 때의 떨림, 방송이 무사히 나가고 난 뒤 밀려오는 안도감. 바쁘고 고단했지만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났다. 나는 분명 그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년 후, 여느 때처럼 평범한 오후에 아이와 마주 앉아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아이는 학교에서 '우리 가족의 직업'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을 적었고, 어떤 아이들은 삼촌, 이모, 고모의 직업까지 적었다며 웃었다. 아버지의 직업 발표가 끝나고 자연스레 엄마의 직업에 대한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지자 아이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에세이 강사입니다!"
"어머, 그렇구나. 그래서 네가 책 읽는 걸 좋아했구나."
아이는 그 순간 슈퍼맨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엄마 직업도 자랑하고 자신도 칭찬받아서 너무 뿌듯했다고. 그리고 친구들이 “에세이가 뭐야?” 하고 물어보는 바람에 일일이 설명하느라 좀 바빴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혹시 그동안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자랑이 내심 마음에 걸린 건 아닌지 궁금했다.
"엄마는 일을 다시 시작해서 좋지만, 너를 키우는 일이 가장 보람되고 행복해."
"당연히 나도 알지!"
그래,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자주 했던 말이라 스쳐 지나간 줄만 알았는데, 그 말은 아이 마음 어딘가에 오랫동안 따뜻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매일 아이 마음밭에 좋은 말씨를 심고 있었나 보다. 언젠가 그 말들이 아이에게 단단한 뿌리가 되어줬으면, 그래서 나보다 더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