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강이 될 수도 있다고요?

by 에스텔라





사라지는 사람들


살다 보면 나의 최선이 누군가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의 최선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하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그것도 무료로 운영되는 도서관 수업에서 내 최선에 물음표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는 수강생들이 있었다. 이유를 듣고 싶지만 결코 알려주지 않는 그들의 뒷모습에는 나의 부족함이 반사되어 매번 눈이 따가웠다.


그럼에도 저 뒤편에서는 여전히 나의 수업을 기다리는 수강생들이 있었다. 표정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이들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수강생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내 부족함을 포용하고 장점을 찾아 격려할 준비를 마친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는 아예 몸을 돌려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나를 원하는 곳으로 가야 없던 잠재력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준 그들에게 나의 최선에 또 다른 최선을 더해 수업을 준비했다.


폐강의 압박


첫 정식 수업을 마치고 '할 수 있겠다'라는 가능성과 '모자란 부분은 차차 채워나가자'란 용기가 생겼다. 나는 비대면 수업으로 방향을 잡아 두 곳에 지원했고 곧바로 연락이 왔다. 초반엔 대기 인원이 생길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비대면이라 편한 방식으로 수업을 듣고자 했던 사람들은 낭독과 글쓰기 위주의 빡빡한 진행에 한 명씩 수강생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업 개설 조건 중에는 수강 인원이 50% 미만이면 폐강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한 곳은 간신히 기준을 넘겼지만 다른 곳은 인원이 30~40% 수준에 불과했다. 담당자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해서라도 인원을 채우라' 압박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굳이 억지로 수강생을 모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죄송하지만 차라리 폐강 절차를 밟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남은 수강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수강생들은 강사의 열정과 수업이 흥미롭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들 덕분에 폐강은 철회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느낀 가능성과 용기는 결국 수강생들의 인정 덕분이었다. 좌절보다 중요한 건 보답이었다. 남아준 이들을 위해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애벗 풀러 그레이브스_포츠머스의 현관문





하루키를 읽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그날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읽는 날이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작가라 접근이 쉬울 것 같았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왜 운동이 필요한지를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마흔을 넘기면 육아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동시에 체력은 점점 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하루키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가 담긴 부분을 골랐다. 우리는 돌아가며 낭독했고 각자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나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달리고 싶어 졌어요!"


Y님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수업 때 '다음 수업이 개설되면 꼭 연락 주세요.'라는 인사를 남겼던 그녀였다. 그녀는 대학 시절 한 브랜드가 주최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을 꺼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준비하고 달렸던 날들, 출발을 알리던 총성,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동안 육아하느라 잊고 지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나는 한강의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달렸을 스무 살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열정과 자유가 뒤섞인 그 시절의 공기가 문득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K님은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고 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손이 덜 가게 되고 그만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찾은 방법은, 가족들이 모두 떠난 오전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점심 전에 1시간 동안 운동 하는 습관을 몇 년째 성실히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내 시간을 잘 쓰는 것,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며 살아가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녀가 왜 글을 잘 쓰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미 그녀는 하루키처럼 '글 쓰는 사람'의 삶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었고, 매일의 운동으로 마음을 다단하게 단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L님은 사실 하루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고 했다. 이상하게 소설이 잘 읽히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돼서 수업이 끝난 후 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 졌다고 했다. 나 역시 한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선입견으로 겉돌았던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책 앞에서 망설이는 수강생을 흥미로운 주제로 안내하고 이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나는, 어쩌면 이런 안내자 역할이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강사


Y님은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K님은 여전히 오전에 글을 쓴 후 운동을 하러 가는 루틴을 지키고 있을까?

L님은 정말 하루키 책을 펼쳐봤을까?


자신을 정성껏 돌볼 줄 아는 사람들, 그런 분들로부터 "수업을 계속해 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영광이었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그 수업은 폐강됐을지도 모른다. 출산 후 지속되는 건망증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억들은 이상하게 잘 잊히지 않는다. 말주변이 없는 강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당신들과 함께 한 순간들이 참 좋았노라고 기록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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