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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Nov 18. 2024

비록 수강생이 줄어들어든다 해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겁니다



줄어들어든다 해도


올 하반기 에세이 수업은 G도서관에서 진행됐다. 작년 상반기에 이어 두 번째 수업이라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 대상을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 정하고 선정 도서도 여성 수필가들이 쓴 책으로 변경했다. 2년째 수업을 하면서 느낀 건, 나는 다양한 연령층보다 현재 내 나이대와 비슷하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여성을 대할 때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업 진행 방식은 동일하지만 수업 대상과 선정 도서가 확실할 때 어떤 시너지를 낼지 한번 실험해 보고 싶었다.


예정보다 신청자가 일찍 마감되고 대기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내심 좋으면서도 비대면 수업에서 내가 10명의 글에 하나하나 정성껏 코멘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낭독과 글쓰기가 함께 하는 수업, 그리고 10명의 수강생. 2시간으로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에 담당자님께 대기는 받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중간에 빠져나가는 수강생이 있으니 5~6명이면 양질의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간 결정이었다.  


9월 첫째 주, 수업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첫 수업은 정신이 없다. 수강생들은 강사인 나와 수업의 분위기를 보고 앞으로 이 수업을 들을지 말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오디오가 물리고 중간에 말도 없이 나가는 분들도 있다. 2년 차가 되니 이런 일에 익숙해져서 나는 남은 수강생들에게 이 수업의 목적과 방향을 설명하면서 첫 수업을 마쳤다. 수강생 중에 재수강을 하신 분이 계셔서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러나 회차가 지나 갈수록 수강생들이 하나둘 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업의 대상 연령과 목적이 확실할수록 결국 배움의 의지가 있는 분들만 남았다. 회차가 거듭 될수록 사람들은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진짜 글을 쓰라고 하면 두려워하고 그 글을 읽어 보라고 하면 결국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인사도 없이 도망치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글은 직접 쓰지 않으면 늘지 않는 장르라 강조해서 말해도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 앞에서 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인풋과 아웃풋을 동시에 진행하는 내 수업에 문제였을까.





빈센트 반 고흐, <유리잔에서 꽃핀 아몬드 꽃>





문득 수업의 정원이 5명 이하일 경우 폐강이 될 수도 있다는 계약 조항이 생각났다. 이쯤 되면 담당자님의 전화가 오겠구나 하는 순간, 핸드폰에 담당자님의 번호가 떴다. 담당자님은 벌써 수업이 절반이 지나갔다며 수강생들은 출석을 잘하고 있냐는 말에, 나는 안타깝게도 계속 줄어든다고 말했다.


"수업이 폐강될 수도 있겠죠? 다음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전할까요?"

"아니에요. 이미 절반이 지났으니 괜찮습니다. 대신 끝까지 마무리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담당자님의 따뜻한 마음에 '다행이다'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씩씩하게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작년의 나를 믿고 한 번 더 기회를 준 담당자님께 미안하면서도 한편 폐강을 진행시키지 않은 배려에 고마움이 뒤섞여 통화를 마친 후에도 한참이나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제 남은 회차는 수강생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수업에 듣기 위해 일주일 하루, 시간을 할애하는 그분들을 위해 진짜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수업 내용을 더 첨가하고 관련 동영상을 샅샅이 찾아보며 담당자님과 남은 분들을 위해 나의 최선을 실행시켰다.


다행히 나의 최선이 그분들에게 닿았는지 한 분은 브런치 작가에 통과했다고 감사 메일을 보내셨다. 매번 떨어져서 포기할까 하던 차에 마지막 수업에서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들은 후 용기 내서 다시 도전했는데 승인받았다며 그 기쁨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있었다. 나는 그 메일을 읽으며 '이거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명이라도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것, 나 또한 그 사람을 보며 책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어떤 거창한 목표보다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에 적절한 보상과 격려를 받는다면 수강생이 줄어 폐강이 될지언정 나는 다시 내가 새로 읽은 책으로 강의 계획서를 짜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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