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라 Nov 19. 2024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루틴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떠나간 오전, 비로소 나는 내가 되어본다. 가족들이 다시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나로 살기 위해 느긋해지려고 한다. 함께 있을 땐 좁다고 느껴지던 집이 혼자 있을 땐 넓어 보여 천천히 거닐어 보기도 하면서. 하루 내 묵은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집안의 창문을 다 열고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춰놓는다. 그 시간 동안 청소기를 꺼내 한번 싹 돌린 후 쓰레기통을 비우고 세탁기를 돌린다. 타이머가 울리면 창문을 닫고 가습기에 물을 넣어 작동시키는 것까지.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 나로 살기 위한 예열 과정은 이렇게 15분 동안 이뤄진다.  


안방 책상에 있는 노트북을 가져와 거실 식탁에 놓는다. 커피 포트에 물을 넣어 끓이는 동안 원두를 분쇄한다. 다 끓은 물을 드립포트에 따르고 분쇄한 원두를 드리퍼에 가지런히 털어 넣는다.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물을 원형으로 돌려가며 뜸을 들이는 것이다. 원두가 빵처럼 부풀어 오르면 뜸 들이기 성공. 이 과정이 무난하게 이뤄졌다면 그날의 커피는 내 입에 맛있을 확률이 높다. 250ml~300ml 사이의 양을 컵에 따르고 식탁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그 사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아, 오늘도 나의 하루가 시작됐다.'




파니 브레이트, <기념일>




하루에 한 잔 허락된 커피를 맛있게 내리기 위한 매일 똑같은 움직임, 10년 동안 이어진 나만의 루틴. 온전히 나로서 살기 위한 이 작은 움직임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감기나 집안의 대소사로 이 루틴이 깨진 날에는 감기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병원도 한달음에 달려가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딸로서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조각조각 깨진 나의 소중한 루틴을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그 얼마 되지도 않는 한두 시간 안에서 행복해할 나를 위해 랜덤으로 찾아오는 일을 과감히 해치운다. 다시 나로 돌아와 있게 해주는 사소한 루틴이 있어서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만에 도서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