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실습이 끝났다고 수업이 종료되는 건 아니다. 완성된 디저트를 접시에 담아 테이블을 차리고 따뜻한 차와 함께 시식하는 일이 남아 있다. 둘러앉아 나누어 먹으며 디저트와 관련된 것부터 살아가는 일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베이킹 클래스에서 내가 바랐던 것은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다. 지금까지 기술을 익혔다면 이제부터 마음을 다룬다. 달콤한 디저트가 주는 위로에 가볍고 즐겁게 빠져들어도 좋고 우연히 엇비슷한 고민이 튀어나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자리가 되어도 좋다. 베이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마음을 기울이는 대상이 겹치고 꿈꾸는 게 맞닿아 있는 경우도 많다.
오늘은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수업을 들은 앳된 그녀는 긴 시간 미술을 했지만 대학에서 전공은 국문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어려서부터 그렸는데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입시 미술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진로를 바꾸었다고 했다. 경쟁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해가 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없게 되는 사이 마음이 바뀔까 두려웠을 것이다.
베이킹을 일로 하게 되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취미로 할 때 베이킹은 순수하게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되자 마음은 바뀌었다. 하고 싶은 만큼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해야 했다. 몸이 고되어지고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웠다. 컨디션이 영 아니어도 수업은 해야 하고, 오늘은 죽어도 만들기 싫은 걸 만들어야 하는 날도 많다. 좋아하는 마음이 월세를 내주고 재료비를 구해오진 않으니까.
한 번은 타르트를 잘 굽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지인의 고백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울적해졌다. 누군가는 케이크를 잘 만드는 엄마나 멋진 파이를 만드는 할머니를 꿈꾸며 두근거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베이킹은 더 이상 즐거운 상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자 마음은 시들해졌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채로 남겨둔 선택도 괜찮은 것 같았다.
코로나 19로 졸업식은 없겠지만 올해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고 곧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거라고 했다. (당시는 코로나 19 유행 초기였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질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아직 정해진 건 아니지만 거기서 그림을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니면 연수 후에 돌아와 국어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잠깐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는데 즐거웠다 했다. 외국어를 좋아해 영어나 중국어를 배워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수업 내내 조용하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눈은 반짝거렸다.
좋아하는 일이던 그림을 잠시 미루어 두었지만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나 보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좋아진 일이 있었다. 그녀에겐 여러 개의 문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다. 그녀가 가능한 많은 문을 열어보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다양하게 경험해본 후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반드시 하나의 문만 선택할 필요도 없다. 여러 문을 열고 동시에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 취미로는 뭘 하세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도자기를 만들어요,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요.”
조건 없이 즐거울 수 있는 일,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나에게도 있다.
“정적인 것들이네요…….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수영도 좋아해요, 산책도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도요,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좋아하는 일을 이야기하는 사이 우리는 더 즐거워졌고 그만큼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녀가 알고 지내는 후배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믿음까지 생겼다. 언젠가 들었던 말 때문일까.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가 끌어들인 일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면 내가 가진 에너지가 그를 끌어당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제과는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일은 그냥 남겨 두려고요."
제과 학교를 다닐 때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한 말이다. 내 마음과 꼭 같아서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 나에게도 제일 좋아하는 일이 있다. 남겨 놓은 마음이 있다. 하나가 아니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마음도 있다. 그래서 든든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를 위해 남겨 둔 마음, 떠올리면 괜스레 웃음이 나고 내일을 꿈꾸며 기다리게 하는 마음 말이다. 그런 마음이 많으면 좋겠다. 꼭 하나일 필요도 없고 첫 번째가 아니어도 괜찮다.
좋아하는 마음이 꼭 하나여야 할까. 하나만 바라보다 그 마음이 그쳐버리면 어떡하나. 그러니 차라리 여러 개의 마음을 갖고 싶다. 내가 열어볼 수 있는 문이 아직도 여러 개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