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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an 22. 2021

고수가 되는 법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베이킹은 오랫 동안 취미로 지속했던 일이라 좋아한다고 믿었다. 언젠가 작은 가게를 열어야지 하고 꿈꿔 왔기에 열정도 있었다. 작은 베이킹 스튜디오를 열고 클래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에 설레었고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데에는 즐겁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거기다 만만치 않은 운영비가 발목을 잡았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졌고 즐거움은 부담으로 바뀌었다. 몸은 고되고 스트레스는 늘었다. 마음엔 여유가 사라지고 의미 없이 몸만 움직이고 있었다. 기쁨은 시들해졌고 열정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스스로 선택했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일 년이 지나자 열정은 식었다. 좋아했던 일이 지독하게 싫어지기도 했다. 꿈꿨던 일이기에 낭패감도 컸다.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스튜디오 주변에는 작은 가게들이 있다. 동네 슈퍼에서 부동산, 도시락집, 자장면집, 우유 배급소 등, 작은 가게 사장님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가게 운영의 곤란과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만만치 않다. 그러면서도 의연하게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라톤 뛰듯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 직장인에겐 달콤한 월급날이 있다면 자영업자에겐 숨통을 조이는 세 빠지는 날이 있을 뿐. 혼자 하는 가게가 문을 닫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작은 가게들 중에는 중고 책방과 독립출판 서적을 다루는 곳도 있다. 중고 책방 ‘ㅅ’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있어 장사가 될까 조심스레 걱정하기도 했다. 독립출판 서적을 다루는 ‘ㅍ’ 서점도 상황이 크게 나아 보이지는 않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원하는 책을 정가보다 싸게 하루 만에 배송받을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베스트셀러도 아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이라니,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ㅅ’ 책방과 ‘ㅍ’ 서점의 사장님은 매일 가게를 열고 공간을 지킨다. 호들갑스럽게 일을 벌이지 않지만 소소한 이벤트를 엮어가며 자기만의 역사를 쌓아간다. 그 뒤에는 생활과 일의 균형을 지키려는 노력도 있다. 조금 늦게 문을 연다든지, 일 년 중 한 달은 책방을 닫거나 누군가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느 직장인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다.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길을 만들어 간다. 한 달이라도 월세가 빠듯하거나, 수강생이 뜸하다 싶으면 속이 타 들어가고 조바심이 나는데 그분들은 어떻게 조용하고 꾸준하게 가게를 지켜가는 걸까. 크게 요동치지 않으면서 가게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무얼지 궁금했다.


 ‘ㅅ’ 책방 사장님의 얼굴에는 늘 은은하게 미소가 배어 있다. 서두르는 기색을 본 적이 없다. 급하게 말을 맺지도 않으셨다. 그런 성품처럼 가게를 꾸리는 일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경제적인 여유가 아니라 태도의 여유 말이다. 늦게 문을 열고 변화에 둔감해 보이는 책방의 모습도 그와 비슷했다. 하지만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웃음 뒤에서 느리게 꺼내는 말씀은 단단했다. 중고 책방을 운영하는 힘은 그런 게 아닐까. 오늘 장사가 잘 되고 내일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대신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맞춰갈 거라고 믿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쌓이려면 자신과 책방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긴 시간 걸으려면 발목에 힘부터 빼야 한다. 편안한 신발과 복장도 필요하다. 함께 걸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더욱 좋을 테고. 하지만 잔뜩 힘을 주고 걷다가는 발목을 삐거나 근육이 뭉치기 쉽다. 결코 오래 걸을 수 없다. 힘을 빼고 주변의 풍경을 살피며 걷다 보면 어디까지 든 걸을 수 있는 기분이 된다. 그러니 힘 빼기야 말로 끝까지 걸을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작은 가게를 지속하는 힘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힘을 빼고 걷는 것. 그렇게 걷다 보면 알게 모르게 시간은 쌓여 있을 것이다.  


 힘을 뺀다는 건 힘을 조절할 줄 안다는 뜻이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거나 악기를 배울 때 선생님은 늘 힘을 빼라고 강조했다. 시간을 들여 힘 빼는 법부터 익혔다. 힘을 뺀다는 것은 적당한 힘을 남길 줄 아는 것이다. 전혀 힘을 주지 않아 도구를 떨어뜨리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적당한 힘으로 소리를 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다치지 않고, 피곤함을 덜 느끼면서 장시간 연주하고 운동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몸에 밀착되게 익힌 것은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힘 빼기에 익숙해지면 몸은 편안해지고 그때야 진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 2년이 되어 간다.  아직도 힘을 빼지 못해 발장구만 요란하게 쳐 대는 초보 수영수 같다. 그런 내게 ‘ㅅ’ 사장님은 노련한 수영 선수 같아 보인다. 몇십 년을 쌓아온 내공으로 설렁설렁 팔만 저어도 물살을 탄 몸이 쑤욱 앞으로 나아가는 노장 수영수.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힘을 빼고 나에게 맞는 강도를 찾으려 한다. 오래도록 즐겁게 걸을 수 있게 편안한 복장을 갖추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도 곁에 두어야지.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게 나의 새로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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