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꿈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by 춤추는바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작은 가게를 열었다. 꿈을 이룬 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문 드문 적은 일기에는 ‘읽고 쓰고 싶다’는 말이 가득했다. 베이킹은 체력 소모가 큰 일이었고 가게에서 일하고 와서 아이를 돌보고 저녁을 먹고 나면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과 손목, 어깨와 발바닥에 통증이 친구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러니 읽고 쓰는 일과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과학교를 다니며 내 꿈이 파티시에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친구가 카페를 빌려주어 주말마다 수업을 하고 으스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이미 ‘작은 가게’의 꿈은 실패할 것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뛰어들었던 건, 육아에서 도망치고 싶어서였다. 누적된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표출되었다.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눌려버린 공은 어디로든 튀어 올라야 했다.


‘나만의 가게’라는 로망은 10년 여 동안 품었던 꿈이라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회사에서 교육 파트에서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휴식과 위안,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걸 막연하게 꿈꿨다. 그건 진짜 꿈을 감싸 놓은 포장지 같은 것이었지만 사람들과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심 또한 진심이었던 건 분명했다. 가게 문을 닫은 지금도 형편만 된다면 작은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가끔 생각한다.


‘느린산책’으로 튀어 오른 공이 늘 힘들고 고단하기만 한 건 아니다. 당시엔 집이 아닌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기고 느린산책으로 향할 때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가슴 깊이 맑은 공기를 채웠다. 그 길을 걸을 때 내 안에 차오르던 즐거운 기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가슴 뛰게 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허탕만 친 것 같았던 날, 숙소에 돌아와 카메라로 그날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니 뜻밖의 순간들이 반짝이며 담겨 있어 놀랐던 것처럼, 컴퓨터 메모리 안에 느린산책에서 마주했던 빛나는 장면들이 무수히 쌓였다.


가게 문은 닫았지만, 이 일은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 있던 목록 중 또 하나를 이루었던 경험이었다. 회사 그만두기,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살기, 엄마 되기, 그리고 베이킹 스튜디오 만들기까지.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문을 닫고 나서도 한동안은 많이 슬퍼 움츠러들었는데 이제야 지난 시간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실패로 부끄러웠던 지난 시도가 힘겹게 도전했던 용기로 다시 읽힌다. 실패라는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그 경험을 토대로 더 괜찮게 다음을 시도를 해보자 생각한다. 더 낫게 실패하자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지금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디저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는 작은 가게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내게 디저트 샵은 두 번째 꿈같은 거였다. 실패했다는 절망 속에서 그냥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자신없어 미루고 숨겨 두었던 첫번째 꿈에 도전해보자고. 이번에도 절망이 용기를 빚어냈다. 디저트 샵이 잘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글을 쓰고 싶다는 아주 오랜 꿈은 옅어지고 케이크를 만드느라 내 진심도 알아채지 못하고 바삐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실패를 반복하면서 실패란 다시 하겠다는 말이라는 걸 배웠다. 실패야말로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부활의 기회라는 걸.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했다. 다음의 꿈으로 건너왔다. 가게를 닫고 지금은 매일 책을 읽고 소소한 일상을 글로 쓴다. 그러는 사이 ‘오 마이 뉴스’ 시민 기자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인터넷 플랫폼에 정기적으로 예술 관련 에세이를 기고한다.


단어를 쓸고 닦고 요리조리 살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생각지 못했던 번역의 기회도 생겼다. 실패를 경험하는 사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기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실패하더라도 '내 것'이라 부를 만한 소중한 경험이 생기기 때문이다.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로 아팠던 시간, 무언가를 끌어안고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진짜 '내 것'이 된다. 오직 내게만 있는 특별한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한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나만의 삶, 나만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실패하면서 양파 껍질 벗기듯 삶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하나씩 벗겨낼수록 숨어 있던 나의 진심에 다가가는 것 같다.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실패일지라도 삶의 비밀에 더 다가갈 수 있다면 기꺼이 미끄러지고 싶다. 그 안에 숨어 있는 게 무언지 모르는 채로 계속 나아가 보고 싶다. 새로운 항목이 끝없이 더해지는 버킷 리스트를 품고 나이 들어가는 것도 멋질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많을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듯 꿈이 많은 삶도 그만큼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실패해도 괜찮다. 그걸 두려워하는 대신 열렬히 통과할 수 있다면, 그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다음으로 나아가겠다는 용기가 있다면 실패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가장 커다란 힘이자 기회다. 우리는 날마다 무언가를 실패한다. 오늘의 계획, 오늘의 다짐을 조금쯤 실패한다.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하루가 날마다 찾아온다.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면서 오늘을 산다. 그렇게 또 내일이 이어질 것이다. 실패하고 도전하면서, 또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서.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느린산책은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않은꿈

#마흔다섯에꾸는꿈

#여전히꿈꾸는삶

#실패해도괜찮습니다

#꿈꾸는할머니가되는게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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