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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Feb 08. 2021

진화론과 코로나19의 공통점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1871

다시 리뷰를 시작한다. 강렬했던 시간도 기록하지 않으면 지워지기 마련이다. 삶에는 소중한 경험들이 많은데 그냥 흘려버리면 참 애석하다. 좋은 작품을 보고, 좋은 여행을 다녀오는 활동을 일회성으로 끝내는 건 분명한 낭비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기를 권한다.


현재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이용하고 있다. 인스타는 사람들과 교류가 쉽지만 글쓰기에는 적당치 않다. 브런치에서는 반응을 얻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생각과 감정을 긴 호흡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두 곳에 글을 올리는 게 번거롭지만 즐기련다. 가볍지만 진실하게 이야기를 전해보자.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 초판의 속표지다.

찰스 다윈의 3대 저서를 읽고 있다. 2020년 3월에는 <종의 기원(1859)>을 완독했고, 최근에는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를 보았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은 적응이 만들어내는 '자연선택'과 번식욕을 원동력으로 삼는 '성선택'이다. 오늘은 후자를 다룬 <인간의 유래(한길사, 2006)>의 리뷰를 적는다.


번역본을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과학책은 까다롭게 선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가 번역한 글은 문장이 좋지 않아 읽기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 반대로 번역가가 작업한다면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 원문을 제대로 옮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글솜씨가 있는 해당 전공자가 펴낸 책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초과학이 약하다는 말처럼 학술 고전의 출판도 열악하다. 찰스 다윈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 아이작 뉴턴의 옆자리에 묻혔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는 의미지만 과소평가됐다. 3종에 불과한 국내의 번역본 수가 이를 방증한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

2006년 2월 한길사에서 펴낸 <인간의 유래 1, 2>를 택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사업 일환으로 출간된 책이다. 곤충의 신경계를 주로 연구한 생물학과 김관선 교수가 번역했다. 다른 전공자의 손을 빌려 어류와 식물의 학명과 국명을 검수할 정도로 꼼꼼한 과정을 거쳤다. 문장도 가장 잘 읽혔다.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2010)>은 추천하지 않는다. 원서의 6.7%만 발췌해서 중략이 지나치게 많다. 주장을 증명하는 내용을 알아가는 과정, 근거로 제시된 다윈과 동료 과학자의 관찰적 자료가 완전히 생략됐다. 번역자도 생물이 아닌 건축공학 전공자다.


동서문화사에서 만든 <인간의 기원(2018)>도 제외했다. 다윈과 인체에 관한 컬러 화보처럼 부수적인 콘텐츠가 많았지만 문장력이 가장 떨어졌다.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었고 온통 중문이다.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옮긴이는 성형외과 의사다.

1881년 찰스 다윈의 모습이다.

<인간의 유래>의 정식 제목은《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다. 자연선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진화를 밝히기 위한 <종의 기원>의 후속작에 가깝다. 예를 들어 수사슴의 거대한 뿔은 생존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음으로 자연선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세상에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는 단계에서 성선택은 어쩔 수 없이 소홀하게 다뤄졌다.  <인간의 유래>에서는 성선택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면서 다윈주의로 불리는 진화론의 완결성을 높였다.


진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체의 모양, 성질, 크기 등의 특징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다윈은 그 원리로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제시했다. 생존을 위한 변화는 자연선택, 번식을 위한 변화는 성선택이다. 예를 들어 북극곰의 흰 털은 사냥을 위한 자연선택, 수컷 고릴라의 넓은 어깨는 경쟁 수컷을 물리치려는 성선택에 해당한다.

수컷 고릴라의 평균 몸무게는 135~195kg, 암컷은 70~115kg 정도다.

진화론, 자연선택, 성선택, 어찌 보면 스스로가 생명체인 자신도 느끼고 있는 원리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어떤 신체 특징이나 습관, 성격이 나와 닮았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유전은 그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 더 나아가 최초 인류라는 존재와 이어진다.


우리는 자연스레 인류는 어디로부터 이어졌고, 그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근본주의 기독교를 비롯한 일부 종교에서는 신이 인간을 비롯한 현재의 상태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다행히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그러한 미신적인 태도를 바로 잡는다.


그 중심에는 <인간의 유래>가 놓여있다. 다윈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등동물에서부터 진화한 수많은 갈래 중 하나가 영장류며, 영장류 속의 갈래 중 하나에서 최근 진화한 산물이 인간이라고 말했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애초부터 악의적인 문구일 뿐이다.

아담의 창조(미켈란젤로 作)는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창세기 속 성경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의 유래>의 목차를 보면 성선택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드러난다. 1부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서 유래했고, 인간과 동물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2부는 자연선택 외에도 성선택이 작동하는 다양한 동물의 사례를 알려준다. 3부는 인간에게서도 충분히 성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진실을 전한다.


인간은 분명 하등동물에서 유래됐다. 사람의 뼈는 원숭이, 박쥐, 물개의 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들의 근육, 신경, 혈관, 내장 기관들은 매우 비슷하다. 사스, 메르스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은 인간과 동물의 신체 조성이 유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 원숭이는 인간의 질환인 뇌졸중과 백내장으로 고통을 받는다. 인간의 약물이 원숭이에게 효과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동물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약물의 임상시험은 인간과의 공통성을 반증한다. 알다시피 모든 포유류의 생식 과정은 거의 같다.


인간과 하등동물의 연속성은 똑같은 변이 원칙으로 발생한다. 다윈이 본문에서 제시한 내용은 생활환경, 용불용, 돌연변이, 상관변이, 증가율, 자연선택 등이다. 고지대 동물의 폐 세포가 크고 많은 것처럼 페루 고원지대에 사는 인디언도 그렇다. 다른 변이들도 마찬가지다.

암컷 캐나다 기러기가 날개로 새끼들을 품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정신 능력도 매우 유사하다. 사람이 감정을 느끼고 호기심을 갖는 것처럼 동물도 그렇다. 모방, 주의력, 기억, 상상, 이성, 도구 사용, 언어, 미적 감각, 재산 개념은 인간 만의 능력이 아니다. 원숭이는 사람처럼 원수에게 복수하고, 가축은 독초를 기억하고 피하며, 많은 암컷 동물이 인간 여성처럼 모성애를 가졌다.


다윈은 도덕감에서는 인간과 하등동물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회성을 지닌 동물군은 그렇지 않다. 도덕이란 여러 충동 중에서는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데 그 결과로 동료를 돕기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늑대는 협동으로 사냥하고, 미국 들소는 수컷이 암컷과 새끼를 보호한다.


도덕이란 결국 사회성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상대방의 위험과 고통을 공감한다는 뜻이다. 천적이 나타나면 토끼가 뒷다리를 구르는 것은 분명 동족에게 신호를 보내는 행위다. 이러한 행동으로 비춰보면 도덕감과 사교성, 공감력은 많은 포유류가 지닌 흔한 정신 능력이다.


정신 능력을 특별한 요소로 삼아 동물군을 분리해서도 안 된다. 인간과 원숭이의 정신적 능력 차이가 서로 다른 군이라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연지벌레와 개미는 동일한 강(綱)이지만 차이는 크다. 연지벌레는 식물에 입을 박고 이동하지 않으며 단순하게 산다.


개미는 다르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노예를 포획한다. 일하면서 함께 놀기도 한다. 하천 밑에 터널을 건설하고 진딧물을 키운다. 수개월 후 만난 동료 개미를 알아보는 기억력도 갖췄다. 저장한 씨앗을 꺼내서 말리고, 개미집 안을 청소하고 저녁에는 문을 닫고 보초를 세운다. 그래도 연지벌레와 같은 분류에 속한다.

개미 사회는 인간 사회처럼 분업하고 의사 소통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다.

인간은 팔이 네 개인 사수목 동물과 유사하다. 얼굴의 생김새와 눈코입귀 등등 부위의 상대적 위치가 비슷하다. 감정으로 인한 근육과 피부의 움직임도 흡사하다. 사람 팔의 털은 팔꿈치를 향하는데 하등 포유류와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도 그렇다. 빗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적응의 결과다.


다윈은 가장 원시적인 인간의 조상이 대추 멍게와 같은 해산 동물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창고기, 경린어, 폐어, 양서류, 단공류 및 유대류, 포유류 및 조류와 파충류의 순서로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현재 과학계의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성선택의 원리와 사례가 제2부에 담겼다. 성선택이 작용하는 방식은 이차성징이다. 생식 활동과 연관이 없는 특징들이 해당한다. 암컷을 찾거나 암컷에게 접근하는 특정 기관, 암컷을 잡을 수 있는 포획 기관이 그 예다.


이차 성징은 매우 다양하다. 수컷의 큰 체형, 힘, 호전성, 경쟁자를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무기, 화려한 색깔과 갖가지 장식, 노래를 부르는 능력이 모두 성선택으로 갖춰진 형질이다. 자연스레 암컷과 수컷의 구조적 차이로 연결된다.

화려한 깃털은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성선택으로 강화된 이차성징이다.

성선택은 다른 방식으로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수컷 철새들은 번식지에 먼저 도착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준비를 한다. 연어는 먼저 강으로 올라와 번식 준비를 마친다. 개구리나 두꺼비도 그렇고, 번데기에서 먼저 깨어나는 곤충도 대부분 수컷이다. 무형적인 생활양식이 형질에 속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수컷의 크기와 강함, 용기, 무기의 개량이 일어난다. 더 크고 힘이 센 수컷 새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암컷과 짝을 맺을 것이다. 자연히 그의 형질을 물려받은 자손은 더 많아질 것이고, 경쟁에서 밀린 수컷의 대는 끊긴다. 당연히 경쟁에 유리한 이차성징은 강화된다.


모든 동물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찾는다. 포유류의 수컷은 열심히 암컷을 쫓아다니며 조류는 깃털과 몸짓 그리고 노래로 암컷에게 구애한다. 악어와 양서류, 많은 곤충의 삶에서도 수컷이 암컷을 찾는 것이 대체적인 사례다. 그만큼 수컷의 형질은 변화가 많고 수명은 암컷에 비해 짧다.


왜 수컷이 암컷을 찾아다니냐는 궁금증은 자연스럽다. 따져보면 암수 양쪽 모두가 상대를 찾는다는 것은 아무런 이점이 없고 노력의 손실만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수정 후 영양 공급과 보호가 필요한 암컷보다 수컷이 구애하는 것이 생존적으로 타당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쫓아다닌다.


그러해도 이차성징의 유전자는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전달된다. 수탉의 특징인 풍부한 꽁지깃과 며느리발톱, 호전성 등을 암탉이 갖는 것처럼 나이를 먹거나 질병을 앓을 때 종종 수컷의 고유 형질이 발현되는 때가 있다. 이처럼 예외적인 경우는 언제나 존재한다.

사슴의 뿔은 성선택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유전과 형질의 전달은 흥미로운 관계다. 실제 생의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변이는 양쪽성 모두에게 발현되는 경향을 지니고, 늦은 시기에 나타나 변이는 같은 성에게만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16세쯤 남자아이만 목소리가 두꺼워지는 변성기를 겪으며, 노루 수컷의 뿔도 생후 9개월이 지나야 돋는 것은 명백한 예다.


다윈은 9장부터 20장에 걸쳐 연체동물, 갑각류부터 곤충,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인간의 이차성징이 어떻게 발현되고 어떤 특징을 갖는지 설명한다. 그중 조류의 이차성징에 가장 공을 쏟았다. 화려한 깃과 노래, 기악을 연주하는 구애를 가장 아름답고 흥미롭게 평가한다.


포유류는 다르다. 조류처럼 매력을 과시하기보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 질투심이 강한 수컷 향유고래는 번식기가 되면 경쟁자의 턱을 물고 몸을 돌려 상대의 아래턱을 뒤틀리게 만든다. 이처럼 수컷 포유류는 큰 체구와 무기, 호전성 등의 이차성징을 사용하여 승리를 얻어낸다.


사람도 비슷하다. 남성은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덩치가 크고 무겁다. 어깨가 벌어져 있으며 근육도 잘 발달했다. 목소리의 음색도 여자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형질이 뒤늦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성선택으로 갖게 된 이차 성징이다. 반대로 여성은 이른 나이에 성숙한다.

조류의 화려한 볏과 깃은 모두 성선택으로 발현한 이차성징이다.

인간과 관계된 성선택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다윈의 여성과 인종, 민족 혐오적인 발언은 당시 시대적 배경의 한계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인간의 유래>의 과학적 결론은 딱 하나다. 인간이 하등 동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 같은 내용이 누군가의 비위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책이 나온 지 올해로 150년이지만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창조설을 믿는 집단과 그들의 비과학적인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관련 단체는 종교와 영합해 과학과 교육에 마수를 뻗치면서 온・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친다.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주장하는 미신적인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단순히 하나의 이론을 수용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와 국가,  나아가 세상을 지탱하는 과학과 객관을 거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코로나 19 관련한 일부 종교의 맹신도 결국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세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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