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1962
지난 2월 『토지』를 완독하고 두 번째로 마주하는 박경리 작가의 작품이다. 『토지』가 쓰이기 7년 반 전에 나온 책이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매우 비슷하다. 『토지』를 잘게 쪼개 한 권으로 만든다면 『김약국의 딸들』이 아닐까 싶다.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에서 배를 부리는 어느 집안의 이야기다. 김약국은 그곳의 주인이자 다섯 딸을 키우는 가장이다. 이야기는 고종이 왕위에 오른 1864년에 시작해 일제강점기로 이어진다. 어수선한 그 시국에 김약국네 주위로 어두운 기운이 감돈다.
작품의 중심은 여성이다. 그리고 유교적 질서에서 금기를 깨트리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토지』에서는 최참판댁 별당아씨, 여기에서는 김봉룡의 아내 숙정이 그랬다. 골자는 여성에게 책임을 묻고 낙인을 찍는 사회의 풍토다.
작가는 그런 비극을 운명이라 적었다. 운명은 고를 수 없는 것이며, 주어지는 것이라고 캐릭터의 입을 빌려 말한다. 동시에 다른 인물은 ‘인생이란 사철이 봄일 수는 없잖아’라면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우리를 위로한다.
표현력은 또 하나의 백미다. 박경리 작가의 글에는 힘들게 살아온 그의 한(恨), 그로 인해 무의미한 침묵조차 가엾게 바라보는 심안이 엿보인다. 거기에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생략된 채 가락처럼 적힌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훔쳐 간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통영에 가야겠다. 『토지』를 읽고 가려던 다짐을 봄이 오기 전 실천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작품에 나온 항구에 서서 담배를 물고, 연기가 사라지는 찰나에 잠시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