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윤식 Jan 16. 2020

60년대 서울인 이야기

무진기행, 1964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9,000원

무진은 어디인가. 무진기행을 읽은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답과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속으론 광주의 옛 이름이 무진주이기에 그곳이 아닐까 추정했다. 하지만 무진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김승옥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순천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지역이다. 결국 무진의 상징성이 무진기행의 목적인 셈이다.


흔히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누가 인생 자기 마음대로 사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취업과 결혼이라는 미션이 완수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는 쳇바퀴의 삶이 시작된다. 만약 타향살이가 더 해지면 당사자의 일상은 더욱 노잼이다. 산 정상에서 함성을 지르는 것처럼 숨통이 트일 희망을 찾다가 주인공은 고향으로 향한다.


시대 배경인 60년대는 변화의 시기다. 농촌 붕괴가 시작됐고 많은 인구가 서울로 유입됐다. 직장뿐만 아니라 새로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 많은 지방인들이 서울행 버스를 탔다. 수록작 「서울 1964년 겨울」에서의 말처럼 ‘서울은 욕망의 집결지’로 변모했다. 그 간극에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했어도 일체화되지 못한 사람들의 내면이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이 책에는 무진기행을 빼고도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렸다. 각각 다른 소재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는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된다. 서울, 60~70년대, 개인, 성장, 모순, 좌절, 죄의식, 순응이다. 서울 중심,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협한 시각은 불편했다. 그때는 그랬다는 변명을 추궁할 생각은 없지만 여자라는 성을 조금은 과하게 그려내는 내용을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고통, 인간이 서로 싸우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김승옥 작가는 그 이유를 사회가 아닌 ‘나’의 시점으로 풀어냈다. 성장하면서 늘어나는 좌절과 죄의식을 성인이 되는 재료로 보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주체이자 객체이며,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평론가의 마지막 문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질이 생명이 되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