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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Jan 12. 2022

현아에게 보내는 편지

내 속에 있는 현아에게 마음을 보내는...

현아에게.. 


내 속에 있는 현아에게, 

내가 삶을 즐기고 살기를 바라는 현아에게, 

나 자신인 현아에게..

 

솔직히 말해서 삶을 즐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 지금까지 즐기고 산다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언제든 일을 하고 있었고 늘 바빴고 늘 무언가를 했지. 일이 없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내가 쓸모없는 존재인 듯 느껴졌으니까.  


현아, 네가 등을 보이고 앉은 것이 어렴풋하게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랐어. 국민학교를 다닐 때 전학을 많이 했지. 그중 두 번째 국민학교에 다닐 때니  2학년 때인가 보다.  


어느 날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며칠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찾아서 집을 나섰어. 비포장 도로에 덤프트럭들이 뿌옇고 노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길을 따라서 간 허름한 집에 아빠가 있었어. 쪼그만 방 안에 사람들이 빼곡했고, 담배 연기가 자욱했어.  엄마는 아빠를 불러냈고 뭔가 언성이 높아진 것도 같아. 나보다 두 살이 어린 동생은 그때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물어본 적이 없어. 아빠와 엄마가 한 참을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왔던 길을 걸어서 가 버리는 거야. 아빠가 있었기에 멍하니 멀어져 가는 엄마를 보고 있었지. 그런데 반대방향으로 아빠도 걸어가 버리는 거야. 서로 반대방향으로 멀어져 가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선 누구를 따라가야 하다가 동생 손을 꼭 잡고 엄마를 따라갔어, 그렇지만 엄마는 욕을 하면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아마 돌멩이도 던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반대방향으로 가던 아빠는 벌써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생 손을 잡고 길에 주저앉아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등에 커다란 바구니를 짊어진 넝마주이 아이들이 걸어오더라. 동생과 내가 우두커니 서서 쳐다봤더니,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다섯 명쯤 되었고 나이가 우리보다 훨씬 많았어. 난 동생을 붙잡고는 가지 않겠다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어. 겁이 났지. 동생 손을 잡고 엄마가 간 방향으로 서둘러 걸어갔어. 얼마를 그렇게 걸었을까. 한참 지난 듯했는데.. 아마도 엉엉 울었을 거다. 동생과 함께. 기억이 선명하게 나지는 않아.

 

다행히 아빠가 나타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지. 그날 우리를 집으로 데려온 아빠는 동생과 나에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하나씩 사줬어. 나는 마론 인형, 동생은 로봇이었어.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 아빠는 엄마가 고생해서 넣은 적금을 노름으로 싹 날렸단다. 


만약 넝마주이 아이들을 따라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 손을 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가끔 궁금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동생을 지켰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버림받았다는 그 싸한 느낌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어.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 그걸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그 후에 엄마에게서 느낀 것은 양가감정이었다.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지. 아빠와 더 안 살려고 했는데, 네가 내 뱃속에 들어왔더라. 너만 아니었으면 살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그래서 네 덕분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에게 원망을 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너무나 잘해주다가,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사고를 치면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며칠을 이불을 쓰고 누워있었지. 너도 잘 알지…? 


한 번은 엄마 기분이 좋아질까 싶어서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빨래를 전부 다 했어. 중학교를 올라갔을 때인지 아닌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아. 엄마는 그렇게 몇 시간을 빨래를 한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이불을 쓰고 또 누워 버렸어.. 고맙다, 아니면 그 많은 것을 다 했냐, 그 한 마디면 되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물론 그 뒤에도. 


사실 버림받았던 것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그날 엄마는 죽으려고 했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나는 그 기억에 아직도 선명한데.. 동생과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던 넝마주이 아이들의 꾀죄죄한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현아야, 나는 과연 엄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의 삶을 망친, 망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불행의 씨앗이었을까, 아니면 그나마 삶을 살게 한 존재였을까? 난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래서 난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뭔가를 증명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다시 제자리이고. 처음에는 단지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겠지만 이제는 그 증명의 대상이 엄마의 탈을 쓴 나 자신에게 하고 있네. 


지금은 내가 살아온 그 모습을 바꿔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너는 답을 알고 있니? 그 답을 줄 수 있니? 평생 당신의 인생은 아빠가 망쳤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보고 컸으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엄마 때문이라고, 그렇게 전가를 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결국 모든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고 있네. 한심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나 보다. 그 이야기를 네가 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는 아직 이 세상의 어려움을 모를 나이니까, 어떤 느낌인지 어떤 생각인지를 들려주면 좋겠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가 먼저 흘러나올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첫 이야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늘 목에 가시처럼 걸린 거니까. 이제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해볼게.. 그냥 생각나는 것, 느끼는 것을 이야기해줘. 


그냥 한 번 시작해 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 현아니까, 그리고 네가 가장 바라는 게 내가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니까. 도와줄 거지? 


미리 고마워. 


2021.09.02 새벽에.. 지현이가 현아에게..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천명은 개뿔

뭔가 잘못됐어  

도대체 어떻게?

내면 아이

나를 만나러 간다

현아는 왜 아직 꼬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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