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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Jan 15. 2022

버려짐에 대해서

현아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 첫 만남

현아가 왜 기타를 고치려고 그 작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편지도 보냈지만 그 뒤에 현아를 다시 불러내서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현실적으로는 너무 바빴고, 마음으로는 현아의 그 모습이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했으면 뭐라고 해야지.. 현아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오늘 현아는 그냥 마당 벤치에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검은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는 발을 까딱 까딱 하고 있다. 발이 바닥에 닺지는 않는다. 벤치에 앉으려고 엉덩이를 먼저 들이밀고 앉은 듯한 느낌이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 중이기도 한 듯하다. 


바로 옆에 있지만 말을 붙이기는 힘들다. 그걸 눈치를 챘는지, 힐끗 나를 쳐다본다. 여전히 눈매는 사납다. 저놈의 성질머리, 딱 나다. 


"왜?" 


"아니 그냥. 지난번에 만났을 때 기타를 고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 계속 생각이 나서." 


"아, 그거.." 


"응. 왜 그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칫, 궁금할 게 뭐람. 건드렸다고 또 짜증 낼라고?" 


"아니, 그건 아니고. 하필 왜 기타인가 싶어서." 


"하도 먼지가 많아서 좀 닦아 놨어." 


"응.. 그렇구나… 고마워. 그건 그렇고 내 편지는 읽어 봤어?" 


내 질문에 답을 할까 말까 살짝 망설이는 듯하다. 나만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불쑥 내뱉는다. 


"옛날이야기잖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아니 그냥 그렇다고." 


"이제 조금 네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싶기는 했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마는.."

 

"솔직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놀랐어. 그때의 일이 이렇게 마음에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심리학에서는 아주 초기 기억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 10살 정도 되었을 때의 기억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지는 몰랐거든." 


"뭐라는 거야? 좀 쉽게 이야기해. 그래서 어땠다고??" 


"어린 마음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고, 너무 겁이 났었나 봐. 어른은 따라오지 말라고 하고, 동생은 울기만 하고, 양아치들은 우리를 끌고 가려고 하고. 내가 전혀 모르는 동네에, 낯선 사람들에, 울고 있는 동생에… 그때 느낌은 혼자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나는 힘도 없고 용기도 없고. 어릴 때부터 울보였으니 나도 엉엉 울고 있었을 거야." 


"기억하지. 넝마주이 애들이 입고 있던 옷이며, 등에 매고 있던 큰 소쿠리.." 


"응. 아마 그때부터였나 봐.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거. 나는 그때 엄마에게 떼를 쓰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엄마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나이였어. 그 뒤에 그다지 말썽을 피운 적은 없었어. 늘 말을 잘 듣는, 공부도 꽤 잘하는, 친척들 사이에서는 어른스러운 아이였지." 


그 말이 거슬렸는지 현아는 갑자기 입을 삐죽거리더니 한 마디 툭 던진다. 


"착하다, 어른스럽다. 그 말이 좋았다고? 난 애야. 그때도 지금도. 어른스러운 아이, 그게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지는 잘 알지? 애가 무슨 어른 같은 행동이야? 난 그 말 싫었어. 눈치만 봐야 했고."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모든 친척 어른들은 나에게, 네가 잘해야 한다, 네가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참 오래전 이야기다." 


현아는 고개를 들고 멀리 언덕 너머로 눈길을 보냈다. 마치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이. 10살 먹은 양 갈래 땋은 머리 여자아이의 모습과는 살짝 이질적이었다. 현아의 그 눈빛이 신경질적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살짝 반짝인 것인 햇살인지 햇살이 눈가에 어린 눈물에 비친 것인지는 판단이 안되었다. 갑자기 어린 몸을 하고 있지만 현아가 더 이상 어리게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바라보는 곳에는 백로 한 마리가 한 발을 들었다 내리고, 또 한 걸음 천천히 옮겨가고 있었다. 한참을 백로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저기 흰 새, 어떻게 보여?" 


"완전 유유자적이네. 저렇게 느리게 천천히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힐끗 쳐다본 현아는 툭 내뱉는다. 


"그렇게 살면 되잖아. 바로 지금부터." 


"….. " 


"응?" 


"그럴까?"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도 이런 말이 가득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바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는 나를 현아는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맑다 못해 약간 푸른빛이 도는 현아의 눈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을 빨리 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나는 그 이상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현아의 맑은 눈에 비해 내 눈은 피곤에 절어 누랬거나 붉은 핏발이 서 있었을 테다. 


현아는 그때 느꼈나 보다. 오늘 대화는 더 이상 해 봤자 도돌이표라는 걸.  


잠시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더니 뭔가 결정을 한 듯 힐끔 나를 쳐다본다.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조금 움직인다. 흔들흔들.. 현아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지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혼란스러운 내 눈치를 읽었는지, 현아는 다시 한번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바닥으로 탁 내려왔다. 팔랑 돌아가는 몸을 따라 쌍갈래 머리가 휙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또박또박. 현아는 그렇게 내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오늘도 현아와의 대화는 대실패. 현아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 뭔가 그래도 조금은 지지하고 응원하는 말을 듣고 싶었나. 그런데 그런 응원은 고사하고, 나는 현아로부터 다시 버림을 받았다. 나를 두고 돌아서 가는 뒷모습에서 어린 날 나와 동생을 버리고 갔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감정이 저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왔다.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천명은 개뿔

뭔가 잘못됐어  

도대체 어떻게?

내면 아이

나를 만나러 간다

현아는 왜 아직 꼬마일까?

현아와 기타

현아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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