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 - 뤄핑罗平
윈난에서 베트남까지
6월, 나는 중국 윈난雲南 쿤밍의 남동쪽에 위치한 석림과 원산의 푸저헤이, 광난의 바메이 마을 세외도원을 다녀왔었다. 이곳을 지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풍광은 다른 곳의 석회암지형에서 보기 힘든, 기묘하지만 평화로운 모양의 잔구들이 끊임없이 광범위하게 이어졌다.
게다가 윈난 남부 여행을 마치고 쿤밍에 들어왔을 때 만났던 쿤밍에 사시는 분이 했던 말 한마디는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윈난에서 구이저우를 넘어 광시 부근까지 차를 몰고 가는데 내 참! 어디를 봐도 봉우리들이 즐비하더라구”
윈난을 지나 구이저우貴州와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그리고 베트남까지 이어지는 여행루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도에서 쿤밍의 동남쪽으로 가다 보면 구이저우를 지나 구이린이 있는 광시와 베트남의 하롱베이가 있는 통킹만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넓게 펼쳐진 석회암 지역은 먼 옛날 바다였을 당시 조개(또는 암모나이트)들과 산호들이 장관을 이루고 살았던 넓은 대륙붕이었다. 융기하기 전, 이곳이 깊은 바다였다면 석회암 지역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카르스트Karst 지형
슬로베니아의 석회암 고원인 크라스Kras지역은, 수많은 호수와 동굴이 있어 세르비아 사람 요반 치비예치Jovan Cvijic(1865~1927)에 의해, 19세기 말 석회암지형에 대한 연구가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그는 당시 유고슬라비아였던 세르비아와 발칸지역의 지형을 연구하여 카르스트 지형의 생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중국의 여행가이며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이 석회암 지형을 연구한 것은 17세기 중반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서하객徐霞客은 카르스트 지형을 연구한 선구자인 셈이다.
Jovan Cvijic가 명명한 Kras의 독일어 명칭인 카르스트Karst는 지금은 지구상에 형성된 석회암지형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충북과 강원도 등지에도 나타나는, 세계 육지 표면적의 약 15퍼센트에 달하는, 카르스트 지형을 만들 수 있는 석회암은 세계 곳곳에서 쉽게 관찰된다. 동굴과 폭포, 호수 등이 발달한 슬로베니아 크라스 지역의 포스노이나Postojna 와 슈코챤 동굴, 석회암 암반이 함몰되어 지하수가 드러난 천연 샘인 멕시코의 세노테Cenote, 중국의 주자이거우九寨沟와 구이린桂林, 베트남의 퐁나케방Phong Nha-Ke Bang 동굴 등 지구 곳곳에 보석처럼 아름다운 명승지로 이름이 난 곳이 많다.
석회암이 기반암인 카르스트 지형은 아주 먼 옛날 고생대(우리나라의 석회암지대)나 중생대에 살았던 암모나이트 같은 조개류와 산호초 등이 자랄 수 있는 얕은 바다였던 곳이 후에 지각변동으로 육지가 되었던 지역이다. 이후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려 석회암을 녹여 동굴을 만들고 흘러내린 물은 석회암이 녹아 우묵한 둥근 형태로 만들어진 돌리네doline와 우발라uvala, 폴리에polje, 싱크홀을 만들고 강을 만들어 흘러내린다.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비로 인해 침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단단하여 침식이 활발하지 않아 볼록하게 남아있는 잔구 형태를 탑카르스트라고 부른다. 탑카르스트는 카르스트 지형의 꽃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원도의 영월에 있는 선돌처럼 한 두 개의 잔구만 있어도 명승지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데, 중국 윈난의 동쪽에서부터 구이저우와 광시좡족자치구를 지나 라오스와 베트남의 통킹만까지 끝이 없이 이어지는 탑카르스트의 풍광은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움은 상상 이상이다.
아가씨와 뤄핑罗平
쿤밍昆明에서 약 230km에 위치한 뤄핑罗平은 2월 말에서 3월에 가야 기가 막힌 유채꽃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유채꽃은 없지만, 구이저우 가는 길에 들리지 않을 수 없는 길목이다.
쿤밍역에서 10시 45분 출발하는 뤄핑행 기차(2016년 10월 현재 37.5위엔)를 타니 점심시간을 지나친다. “신선한 과일 있어요” 눈길이 절로 가는 낭랑한 소리에 요기라도 할 것이 없는지 지나가는 매대를 기웃거리니, 팔고 있는 간식거리도 귤과 망고 등 온통 과일이다. 기후가 좋은 윈난은 종류만 달라질 뿐 언제와도 온대 과일과 열대과일로 넘쳐난다. 윈난을 생각하면 맛있는 과일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과일은 아마도 내가 윈난을 찾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다.
옆에 앉은 아가씨는 뤄핑이 고향이란다. 두어 시간 동안 이야기하다가 좀 친해지니 토요일이 어머니 생일인데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내일 밤(금요일) 구이저우의 싱이로 넘어가야 하니 어렵다고 하자 오늘 저녁이라도 가능하냐며 호의를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중국이지만 인심만은 다정하고 순박하다. 뤄핑까지 오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한마디라도 짧은 중국어로 말하려고 하고, 이 아가씨는 한마디라도 영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중국인 치고는 영어를 제법 잘 구사한다. 영어를 잘 한다고 했더니 17살 때부터 공부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몇 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보다 영어로 말하는 젊은이가, 귀하지만 그래도 간혹 보인다.
석림의 추억
출발하여 두 시간쯤 지나 기차가 석림石林 역에 가까워지니 창밖 풍경은 온통 나지막한 언덕에 펼쳐진 돌탑들이다. 일반에게 공개된 석림(스린)은 해발고도 약 2000m에 발달한 카렌펠트로 대체로 평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구릉에 있는 카렌(삐죽삐죽한 석회암 석주)들은 지금도 풍화와 용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카렌이란 석회암이 빗물이나 바람에 차별적으로 용식하면서 남아 있는 석회암 기둥으로, 카렌이 집단적으로 넓게 남아있는 곳을 카렌펠트라 한다. 카렌은 카르스트 지형의 발달과정에서 장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지형이다.
관광지역으로 개발된 석림은 엄청나게 넓어 아침 일찍 서둘러 들어가 대충 본다고 해도 한나절로는 부족한 곳으로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지난 6월에 방문했을 때 돌 숲으로 잘못 들어가 길을 잃어 한참 헤매기도 했었다. 이처럼 넓은 곳이 일반에게 개방된 곳은 전체면적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얼마나 넓게 펼쳐진 카렌펠트지역인지 석림을 밖에서 보니 이해가 간다.
니우제牛街의 뤄스티엔螺丝田과 진지펑金鷄峰, 봄날의 유채밭을 그리다
호텔에 배낭만 던져놓고 뤄핑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니유제牛街 가는 길엔 건조된 붉은 주황빛의 옥수수 더미들이 마을을 물들인다. 호텔 로비에 있는 샹들리에의 모양이 옥수수 모양이었던 것을 보면 이곳 또한 옥수수로 유명한 고장이다.
회오리를 닮은 밭 뤄쓰티엔螺丝田은 유채꽃이 있는 사진을 많이 봐 왔던지라 기대 없이 봐도 역시 허전하다. 카르스트 지형의 유년기 모습인 돌리네doline는 여러 단으로 형성되어 입체적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돌리네가 우발레uvale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돌리네는 배수가 좋아 주로 밭으로 사용되는데 돌리네 아래로는 물길이 흐르기도 한다.
뤄핑 유채밭의 상징인 10월의 진지펑金鷄峰에는 넓디넓은 벌판에 유채꽃 대신 수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강렬한 노랑과 연둣빛의 유채로 이미 뤄핑의 이미지가 각인된 뇌리에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지만 튼실한 알맹이를 안고 있으면서 꼿꼿하게 무거운 머리를 치켜든 붉은 수숫대가 대견하다.
유채가 덮인 풍경을 상상을 해보려고 나지막한 잔구 위로 올라가 봐도 노란색의 찬란한 이미지는 도저히 대입이 안 된다. 연둣빛의 생강 잎이 웃자라 있는 한 편에는 유채를 심으려고 하는지 붉은 흙을 갈아엎었다. 바로 테라로사terra rossa다.
테라로사는 카르스트의 용식이나 풍화과정이 어느 정도 끝나면 물에 잘 녹지 않는 물질인 철, 알루미늄, 마그네슘 등의 풍부한 산화물들이 섞인 점토나 모래 등이 돌리네나 우발레, 폴리에 등의 바닥에 퇴적해서 형성된 비옥한 붉은 토양이다. 윈난 지역에 나타나는 비옥한 붉은 흙은 대부분 테라로사이다.
둬이허多依河 풍경구
물을 따라 거주지를 정하는 부이족布依族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윈난에 사는 부이족의 3분의 2 이상이 둬이허多依河풍경구 근처에 모여 산다. 뤄핑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40Km, 차로 1시간 이상 가야 한다. 10월은 뤄핑 지역에서 비성수기인지라 풍경구의 주차장은 한산하다. 이곳은 구이저우와 광시성의 경계지역으로 구이저우의 싱이와 아주 가깝다.
원시적인 숲을 따라, 물길이 흐르는 카르스트 지형에서 나타나는 계단식 폭포와 물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가 있는데 물레방아가 곳곳에 놓여있어 풍경구는 평화롭고 아늑한 느낌까지 선사한다.
들어가는 길은 걸어가거나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셔틀버스는 이름이 있는 뷰포인트마다 세워준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걸어가는 것이 좋겠지만 거리가 꽤 있어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도 보고 나오는데 한 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주차장이 있는 풍경구 입구에서는 우리가 보름날 지어먹는 오곡밥처럼 부이족이 매년 3월 3일에 지어먹는다는 화미판(오색 꽃밥)을 판다. 이들이 많이 재배하는 생강과 유채꽃, 단풍나무 등에서 추출한 천연색소를 찹쌀에 물들여 지은 밥으로 출출할 때 먹으니 맛있다. 옆에는 밥과 함께 생선을 구워 판다.
지룽九龙폭포
뤄핑에서 북동쪽으로 약 22Km 위치하는 이 폭포는 근래 만났던 가장 아름다운 폭포가 아닐까 한다. 동문이 정문이지만, 높은 곳에 위치한 반대쪽 서문으로 들어가서 폭포가 시작하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단식으로 넓어지는 폭포 군을 관람하니 그 또한 느낌이 신선하다.
카르스트 지형에서 만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10단계 계단식의 폭포는 보기 드문 맑고 청명한 날씨까지 더해, 이틀 후 그 유명한 황궈수를 봤지만, 물안개 피어오르는 제일 낙차가 큰 新龍폭에서 대나무 뗏목을 탔던 시간과 함께 한 지룽 폭포에서 만끽했던 행복한 기분은 따라오지 못했다.